1974년 8월8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자 다음날 제럴드 포드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뜻밖에 대통령이 된 포드 앞에는 만만찮은 과제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1차 오일쇼크에 따른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켜야 했고 침체된 경기도 살려야 했다. 만성 적자상태였던 재정도 챙겨야 했다. 포드는 재정 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예산안에는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1976년 야당인 민주당이 복지·노동·교육을 총괄하는 부처 신설안을 내자 포드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 때문에 예산안 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9월30일부터 연방공무원 임금 지급이 중단됐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정부 업무 정지(셧다운)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미국의 독특한 예산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미국은 예산안의 심의·의결은 물론이고 편성권까지 의회가 쥐고 있다. 이로 인해 의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야당과 대통령 사이에도 예산안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오간다. 공방이 길어져 새 회계 연도가 시작되는 10월1일에도 예산안 처리가 되지 않으면 잠정지출 결의안을 통해 집행을 하는데 이마저 안 되면 셧다운에 들어간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셧다운을 가장 많이 경험한 이는 로널드 레이건으로 1981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여덟 차례나 겪었다. 총 다섯 차례 셧다운을 겪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7년 한 해에만 세 차례나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셧다운은 국민 불편은 물론이고 경제에도 부담을 주기 때문에 대개 길게 끌지는 않는다. 평균 지속기간은 6.5일이다. 가장 길었던 사례는 빌 클린턴 재임 시절인 1995년으로 21일간 정부가 문을 닫았다.
지난 22일 시작된 21번째 미 정부 셧다운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이 포함되지 않으면 셧다운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칫 셧다운이 해를 넘길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두 차례에 이어 이번까지 올 한 해 세 번째 셧다운을 겪고 있다. 한 해 세 차례 셧다운은 1977년 카터 이후 두 번째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돼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 예산 편성·심의 시스템이지만 정쟁에 발목이 잡히는 모습이다. 미국의 사태를 보노라면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운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철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