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예상에 크게 못 미치는 지난해 4·4분기 매출 전망치를 2일(현지시간) 제시하면서 미국 기술주를 대표하는 5대 기업인 ‘FAANG’ 전반이 실적 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게 됐다. FAANG의 맏형 격인 애플의 지난해 4·4분기 매출 전망은 이미 한 차례 시장의 실망에도 하향 조정을 거친 것인데 이마저도 대폭 미달한 것으로 나타나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실적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애플 쇼크로 미국 경제의 양대 축인 실리콘밸리와 뉴욕에도 먹구름이 몰리며 거센 후폭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중 간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의 경기 부진이 가속화하면서 미국 대표 기업인 애플도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나 진행 중인 양국 간 무역협상은 타결 압박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애플이 연초 투자자에 대한 최고경영자(CEO) 서한을 통해 밝힌 지난해 4·4분기(미국 2019회계연도 1·4분기) 실적 전망치는 충격 자체다. 애플은 지난해 4·4분기 매출 전망치를 이날 840억달러로 예상했는데 이는 지난해 11월1일 예상한 890억∼930억달러(중간값 910억달러)에 비해 평균 70억달러가량 감소한 것이다. 금융시장과 IT 업계는 당초 지난해 10월쯤 애플의 4·4분기 매출이 9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다. 애플이 910억달러를 제시하자 실망을 표하며 애플 주식을 투매한 바 있다. 한 차례 조정을 거친 매출 감소 폭이 처음 20억달러보다 3~4배나 폭증한 셈이다.
팀 쿡 CEO가 이날 “중국 등 중화권 경제 감속의 규모를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고 이례적으로 실수를 인정한 것도 2개월 전 예상한 매출 둔화폭과 엄청난 차이가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전망치에서 나타난 매출 감소의 대부분, 그리고 거의 100% 이상인 전년 대비 글로벌 매출 감소는 중화권에서 발생했다”면서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아이폰 새 모델의 업그레이드가 애초 기대만큼 강한 수요를 창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4·4분기 매출 감소는 어느 정도 예측됐지만 중국의 경기 부진과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피해 등이 훨씬 심각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10월 중순 “새 아이폰에 대한 중국 수요가 빠르게 감소하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신호가 나온다”며 “특히 4·4분기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쿡 CEO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둔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자명하다”면서 “미중 무역분쟁은 중국 경제에 추가적인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실리콘밸리 5대 IT 기업을 이르는 ‘FAANG’의 실적이 미국 금리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대거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애플 쇼크’로 한층 확산되는 양상이다.
특히 4·4분기 실적 전망과 관련해 아마존은 665억~725억달러의 매출을 지난해 예상하며 시장 전망치(738억달러)를 이미 밑돈 바 있어 추가로 실적이 악화될 경우 애플에 이어 또 한번 실리콘밸리에 충격파를 줄 것으로 우려된다. 구글도 지난해 4·4분기 영업비용 증가에 따른 이익 부진이 예상되며 페이스북은 4·4분기 매출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5~9%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IT 대기업들의 주가가 회복할 것으로 잔뜩 기대해온 월가 등 국제금융시장도 이날 찬바람이 불었다. 애플 주가는 이날 시간외거래에서 8% 이상 급락해 3일 폭풍우를 예고했으며 먼저 시장이 열린 아시아는 외환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가 애플을 때리자 자산가치가 갑자기 급락하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현상이 일어나며 일본 엔화는 이날 한때 달러당 104.87엔까지 급등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애플 쇼크로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안전자산인 엔화에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 상황에 민감한 호주달러 가치도 직격탄을 맞아 1호주달러는 전 거래일보다 3.5% 떨어진 호주달러당 0.6741달러까지 급락하며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위험회피 심리에 터키 리라화 가치도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달러 대비 6% 이상 하락했다.
다만 애플 등 미국의 대표 IT 기업들이 무역전쟁의 부메랑을 맞으면서 진행 중인 미중 무역협상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무역 공세에는 방어 논리로 제시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애플의 매출 전망치 하향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의 긴장 때문에 미국이 어떻게 역풍을 맞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고 지적했다./뉴욕=손철특파원 박홍용기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