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 법원행정처장에 취임하는 조재연(사진) 대법관은 사법부 내에서 입지전적 역사를 쓰고 있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주경야독’으로 공부해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또 판사·법무법인 대표 변호사 등을 거쳐 변호사로는 처음으로 사법부 ‘2인자’격인 법원행정처장까지 올랐다. 법관 재직 당시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놓아 ‘반골 판사’로 불렸던 터라 ‘국민 눈높이에 맞춰 사법제도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의지가 이번 인사에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대법관이 중학교 졸업 후 진학한 곳은 덕수상고였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부친을 따라 전국을 떠도는 등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은 탓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인 1974년 부친이 작고한 뒤에는 고졸 행원으로 한국은행에 입사해 소년 가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법조계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야간부로 편입,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여동생이 취업한 뒤에는 은행을 그만두고 사시에 몰두해 1980년 수석으로 합격했다.
특히 11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정권 눈치를 보지 않는 이른바 ‘소신 판결’을 내렸다. 1985년 사회 고발적인 ‘민중달력’을 제작·배포한 피의자들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 청구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며 기각한 게 대표적 사례다. 또 국회 야당의원 속기록을 ‘민주정치1’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사회과학 출판사 ‘일월서각’ 대표가 즉심 재판에 끌어오자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1987년 어로작업 중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를 간첩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도 조 대법관이다. 1993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에는 본사와 대리점 사이의 연대보증 자동 연장 약관 조항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을 끌어내는 등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도 힘썼다. 2013년에는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한 곳인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대표 변호사를 맡아 국내 10대 로펌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김 대법원장이 조 대법관의 법원행정처장 내정 사실을 밝히면서 “법원 내부에 한정된 시각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사법개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힌 점도 그가 걸어온 길과 관련이 깊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