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도발→핵 위기→핵 협상→합의 파기로 이어지는 과거의 북핵 협상은 북한이 핵무기를 고도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점에서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실패한 북핵 협상을 돌아보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철저한 검증과 명확한 원칙 없이 급조된 핵 합의에 동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핵 협상의 시작은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다. 미국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는 등의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 2기와 중유를 제공하고 3개월 안에 관계정상회담(수교회담)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합의 이후에도 핵 개발을 지속한 북한은 2002년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을 인정한 뒤 200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남북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네 차례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그에 따른 체제안전 보장을 담은 ‘9·19공동선언’을 발표했지만 미국이 대북제재에 나서자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초강수를 뒀다. 2007년에도 9·19공동성명의 이행계획서인 ‘2·13합의’와 ‘10·3합의’가 마련되고 2008년 북한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비핵화 협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핵 검증 방법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2년 북미는 24만톤의 식량 등 대북지원에 따른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을 내용으로 한 ‘2·29합의’를 이뤄냈지만 역시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에 복귀한다는 등의 명확한 원칙을 마련해야 북핵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