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구비 부리부리한 쪽이 피에르(70·Pierre Commoy), 조금 갸름한 얼굴이 질(70·Gilles Blanchaer)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진가로 활동하던 피에르와 에콜보자르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잡지사에 근무하던 질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76년 파리의 겐조 부티크 파티였다.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로서의 시작이었다. 42년간 하나의 이름으로 활동해 온 프랑스 출신 작가듀오 ‘피에르와 질’이다.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이들이 14년 만의 한국 개인전인 서울 강남구 K현대미술관의 ‘피에르와 질’ 전시를 위해 방한했다. 작가들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5’의 제작진이 따라왔을 정도로 북적이는 가운데 서울경제신문이 단독으로 이들을 만났다.
“인간은 사랑과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요. 그 어떤 예술가도 이 부분을 외면할 수 없고 저마다 작품 속에서 이 두 가지 테마를 다르게 표현합니다. 꿈과 사랑을 갈구하지만 세상은 슬프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면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양면성을 중첩시켜 보여주죠.”
작품들은 현란하면서도 음험하다. 생일케이크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인 배경 속에서 웃고 뽐내는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허락되지 않은 꿈, 금지된 상상처럼 쾌락과 죄책감을 동시에 부르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달콤쌉사름한 초콜릿처럼 자꾸만 찾게, 좀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반가운 것은 빅뱅의 탑과 투애니원의 씨엘(CL) 같은 K팝 스타의 등장이다.
“우리는 오래된 K팝 팬”이라며 “아침 먹을 때마다 아리랑TV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들이 개구쟁이 같은 눈빛을 반짝였다. “오래 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지난 2015년 파리 패션위크에 온 씨엘을 초대했더니 흔쾌히 찾아오더라고요. 투애니원에서 전사적 이미지를 보여온 그녀를 공주처럼, 여신처럼 바꿔놓았죠. 이번 전시에는 선보이지 않은 다음 작품에서의 씨엘은 거칠고 센슈얼한 모습일 겁니다.”
피에르와 질은 반드시 파리의 자신들 스튜디오에서만 작업한다. 씨엘은 마침 독일에서 영화를 찍고 있던 탑을 불렀다. “즉흥적으로 탑과 작업하게 됐는데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왔는지 배우로서의 프로패셔널리즘에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당시 영화촬영장에서 곧장 오느라 피묻은 셔츠 차림이었던 게 독특한 첫인상을 안겼어요. 즉석에서 금속으로 만든 꽃이 총 맞은 유리처럼 보이는 배경으로 피흘리는 그의 모습을 찍었어요. 깨지고 위험한 상황, 피와 장미가 이루는 묘한 조화가 불완전한 인생 속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탑의 캐릭터와도 닿아있고요.”
피에르와 질은 1977년부터 장 폴 고티에,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입생 로랑, 마돈나 등과 작업했고 일명 ‘찡그린 얼굴’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었다. 피에르가 촬영한 초상 사진 위에 질이 그림을 그리고 액자까지 손수 제작, 장식하는 방식으로 ‘사진과 회화 융합’의 선구자적 입지도 다졌다. 이들의 영향은 영화나 광고 등의 차용을 통해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미소년과 남성누드의 이미지들은 게이(gay) 문화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미학자들은 피에르와 질의 2인 협력 체제를 ‘더블플레이’ 혹은 양성적 역할이라고도 분석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등한 욕망을 갖고, 가질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그런 젠더(gender) 구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할 미래는 성이 아닌 인격, 개별적 존재의 고유함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성별과 인종 등 모든 차별이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줄 겁니다.”
작가들의 40년 활동을 총망라해 211점의 원작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3월17일까지 이어진다.
·사진제공=KM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