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지난해 3·4분기 자금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도 실제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서 곳간만 더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하강 국면에 투자 심리가 차갑게 식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18년 3·4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활동의 결과 발생한 국내 부문의 순자금운용(자금운용액-자금조달액) 규모는 28조2,000억원으로 2·4분기(14조원)보다 늘었다. 순자금 운용은 경제주체가 예금, 채권, 보험·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 등(자금 조달)을 뺀 금액이다.
부문별로 가계 및 비영리단체 순자금운용규모는 전분기와 동일한 11조원을 기록했다. 다만 2009~2017년 3·4분기 평균 운용 규모가 13조6,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예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신규 주택구입이 이어지면서 대출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가계의 자금 조달은 25조1,000억원, 자금 운용은 36조1,000억원으로 모두 전 분기(각각 27조6,000억원, 38조5,000억원)보다 줄었다.
비금융법인기업은 순자금조달 규모가 2·4분기 -15조4,000억원에서 3·4분기 -7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비금융기업이 이 기간 전분기(27조5,000억원)보다 대폭 늘린 51조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도 순자금조달규모가 감소한 이유는 시장에서 돈을 끌어모은 뒤 상당부분(44조원)을 금융기관 등에 예치했기 때문이다. 이는 설비·건설투자를 줄이고 한국전력 등 공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일반정부는 순자금운용 규모가 같은 기간 13조1,000억원에서 17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정부는 상반기 중 1년치 재정의 60~70%를 조기 집행하는데 이에 따라 하반기 정부지출 규모가 줄어들어 자금 잉여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14배로 전 분기 말(2.15배)보다 소폭 하락했다. 이는 2012년 2·4분기(2.14배) 이후 최저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가 주택 투자를 하면서 금융자산에 투자할 여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