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녹산동 국제물류산업단지 내 신발산업집적화단지에 있는 삼덕통상 본사. 지난 11일 찾은 이곳은 공장과 사무실, 물류 기능을 모두 갖춘 복합 기지다. 생산 부문에서는 170여 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신발 완성품을 만들고 1팀부터 7팀까지 있는 연구개발(R&D) 조직은 고가의 테스트장비를 갖추고 디자인과 기능, 소재의 물성까지 연구하느라 바쁘다. 삼덕통상은 베트남 공장에서 만든 반제품을 부산으로 들여와 완성품 신발을 만들고 국내 10개 아웃도어 브랜드에 등산화와 트레킹화 등을 납품한다. 이 회사의 연간 생산량은 240만 켤레 정도. 과거 개성공단이 잘 돌아갈 땐 360만 켤레까지 생산했다. 삼덕통상 회사 곳곳을 둘러보니 시설은 넓고 깨끗하며 생산이든 R&D든 조직에 활기가 넘친다.
그러나 문창섭(63·사진) 회장은 “(회사가) 겉으로는 잘 돼 보이죠? 사실은 아직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2016년 2월 갑작스런 개성공단 폐쇄에 따른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다. 문 회장은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은 좀 더 물샐 틈 없는 경영이 필요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삼덕통상에게 개성공단 폐쇄는 악몽이었다. 개성공단 시범단지 시절에 들어가 반제품을 개성에서 생산해 부산에서 완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폐쇄 직전에는 북한 노동자 2,900명을 고용해 반제뿐만 아니라 일부 제품은 완제까지 했다. 그 상황에서 나온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발표는 기업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 준하는 상황이었죠. 금형부터 다 거기 있는데 뭘로 신발을 만듭니까. 바이어들은 제품 달라고 아우성이고…앞이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회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 회장의 선택은 ‘회사의 경영 이념인 신용·신뢰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감을 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장사는 하게 해줘야 한다고 결심했다. 10개 브랜드가 각각 300~400개 씩의 대리점을 갖고 있다면 그들 각자 판매계획을 세웠을 텐데 그걸 다 어긋나게 할 수는 없다는 게 문 회장의 판단이었다.
문 회장은 직원들을 중국에 급파해 개성을 대신해 반제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공장을 20여 개 섭외했다. 웃돈을 줘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금형을 새로 제작하고 원부자재를 새로 조달하는 데도 돈일 들었다. 어마어마한 손실이 났지만 결국 바이어들과 약속한 물량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는 베트남에 개성을 대체할 공장을 짓기 시작해 현재 가동 중이다.
만일 개성공단이 다시 열린다면 당시 어려움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베트남 공장을 수출 전용 기지로 돌리고 내수는 개성과 부산에 맡길 경우 결과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신발은 노동집약적 산업이어서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보통이다. 그 많던 부산의 신발 완제품 공장 중 남은 것은 삼덕을 포함해 2~3개 뿐이다. 하지만 문 회장은 부산 지역의 신발 원부자재 공급 능력만은 아직 최고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현재도 원부자재를 100% 한국에서 조달한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신념도 있지만 아직은 부산의 신발산업의 뿌리가 살아있어 완제품 제조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문 회장의 판단이다.
“개성이 다시 열리고 신발 분야 남북경협이 확대되면 원부자재는 다 부산에서 갖다 써야 합니다. 북한이 신발 원부자재 공급 인프라를 갖추려면 20년을 걸릴텐데 최소 그 기간은 부산의 신발 관련 산업이 다시 흥하는 겁니다. 개성은 오늘 주문한 제품을 내일 팔 수 있는 유일한 생산기지입니다. 말이 통하고 품질이 보장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협력사들과 함께 어려움을 견디며 개성공단 재개를 기다리고 있어요.”
문 회장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 수년 전 골프도 끊었다. 최근엔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해운대에서 공장 옆으로 이사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문 회장은 “신발 원부자재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한국에 완제품 공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을 삼덕통상이 하겠다”면서 “특히 R&D 역량을 더욱 확대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부산=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