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제약 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K바이오’의 글로벌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앞세운 글로벌 제약사도 개발에 고배를 마신 분야에서 잇따라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한국 바이오제약 경쟁력이 이미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이 글로벌 바이오제약 시장의 변방에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으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개발(R&D) 경쟁력이 꼽힌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의 R&D 투자금액은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2011년 9,700억원 수준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셈이다.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국내 기업들도 이제는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갖고 R&D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전체적인 R&D 금액이 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지만 매출액에서 R&D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도 청신호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제약 상장사 64곳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율은 평균 7%였다. 글로벌 제약사의 R&D 비중이 20%를 웃도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낮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R&D 투자 비중이 10%를 넘어선 기업도 전년보다 2곳 늘어난 16곳에 달했다.
R&D 투자는 국산 신약의 글로벌 진출이라는 성과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을 주도하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각각 3종의 바이오시밀러를 상용화하면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올해는 글로벌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바이오시밀러 신제품을 출시하고 본격적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이 독자 개발한 신약도 줄줄이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한미약품이 미국 바이오 기업 스펙트럼에 기술수출한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다리고 있고 GC녹십자의 면역결핍 치료제 ‘IVIG-SN’도 FDA 승인이 전망된다. 미국은 글로벌 신약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지만 국산 신약은 2003년 처음 미국 진출에 성공한 이래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웅제약은 국내 최초로 보툴리눔톡신 ‘나보타’의 연내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고 바이로메드는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VM202-DPN’의 미국 임상 3상의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SK바이오팜은 2종의 신약을 앞세워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수면장애 치료제 ‘솔리암페톨’은 미국 바이오 기업 재즈와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제품이고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임상시험부터 상용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신약 제품군이 다양화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과거에는 항생제·항암제 등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주력했지만 최근에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를 비롯해 각종 난치성 질환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지만 상용화에 성공했을 때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대웅제약·휴온스·셀트리온제약 등은 신약에 가려 주목도가 덜했던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의 미국 진출에 성공하며 국산 제네릭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의 R&D 경쟁력은 상용화 전에 신약의 판권을 넘기는 기술수출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신약 기술수출 계약은 5조3,600억원에 이른다. 2017년 1조4,000억원에 비해 4배 이상 뛴 금액이다. 같은 기간 기술수출 계약도 8건에서 11건으로 늘어났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산 신약의 경쟁력을 눈여겨보기 시작하면서 기술수출 계약의 양과 질 모두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R&D 경쟁력이 K바이오의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자 정부도 지원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3개 부처는 앞으로 10년간 2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국가신약개발지원사업’을 준비 중이다. 기존 3년간 330억원 규모로 운영되던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을 대체해 국산 신약의 조기 상용화와 글로벌 진출을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국산 신약이 앞으로도 꾸준히 글로벌 무대에서 성과를 내려면 미래를 내다보는 R&D 투자가 필수적”이라며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R&D 투자와 인재 확보에 나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