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들의 오랜 기다림 탓이었을까? ‘라이온 킹’ 서울공연 넷째 날인 지난 12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로비는 공연 시간(오후 2시) 한 시간 이전부터 북새통이었다. 포토존뿐 아니라 굿즈 판매 부스의 줄은 장사진을 이뤘고, 오페라극장 주차장 역시 꽉 차 다른 주차장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라이온 킹’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뮤지컬은 모름지기 2030이 관객의 중심이지만 이날 ‘라이온 킹’은 달랐다. 공연장에는 10대부터 50대까지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어 ‘가족 뮤지컬’이라는 명성을 실감케 했다. 나란히 앉을 좌석을 구하지 못해 가족 구성원별로 각자 좌석에 앉았다가 관람 후에 “다시 모이자”는 말을 주고받는 관객들 모습 역시 쉽게 볼 수 있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라이온 킹’이 드디어 대구 공연을 마치고 서울 공연을 시작했다. 1997년 초연 이후 9,500만 명이 관람해 세계 흥행 1위에 오른 ‘라이온 킹’은 브로드웨이 초연 20주년을 맞이해 인터내셔널 투어 공연 중이며, 한국에서도 티켓 오픈 즉시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흥행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공연은 주술사 라피키의 오프닝 곡인 ‘더 서클 오브 라이프’(The Circle of Life)가 울려 퍼지면서 시작을 알렸다. 무대에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기린, 가젤 등 갖가지 동물들이 등장하고, 이어 객석 통로를 따라 얼룩말과 코끼리 등이 줄지어 나오자 객석에서는 “와”라는 환호와 함께 감탄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그 어느 공연보다 오프닝부터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다. 관객들로 하여금 오프닝과 함께 자신들이 마치 아프리카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을 정도다. 한 관객은 “마치 뉴욕에서 공연을 보는 것 같아서 돈이 아깝지 않았다”며 “중간에 ‘대박’ ‘감사합니다’ 등 한국어 대사 팬서비스도 흐뭇했다”고 말했다.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라이온 킹’은 어린 사자 심바가 역경을 딛고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이다. 태양이 뜨면 진다는 자연의 순리, 지지 않는 태양이 없듯 권력 역시 뜨고 진다는 진리를 비롯해 왕의 자리 즉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자들의 무리를 이끄는 왕인 ‘무파사’는 따뜻한 마음에 자연과 조화의 조화를 원칙으로 삼는 훌륭한 지도자다. 그에게는 어린 아들 ‘심바’와 그를 질투하며 왕의 자리를 노리는 동생 ‘스카’가 있다. 스카는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하이에나들과 결탁하고, 무파사를 죽이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심바에게 스카는 “멀리 떠나서 돌아오지 말라”고 위협한다. 스카의 말대로 먼 곳으로 떠난 심바는 미어캣 ‘티몬’과 혹 멧돼지 ‘품바’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들은 절망적인 순간마다 심바에게 커다람 힘이 돼 준다. 시간이 흘러 어린 심바는 청년으로 성장하고 아버지 무파사가 다스리던 곳으로 돌아온다. 심바는 스카의 폭정에 시달리는 사자들이 모습을 목격하고, 또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되지만 복수는 하지 않는다. 대신 스카에게 “멀리 떠나라”는 방출 명령을 내릴 뿐이다. 스카의 방식대로 복수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태양(심바)이 뜨면 이전의 태양(스카)이 사라지는 ‘생명의 순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프리카 동물들의 이야기가 애니메이션 등 영상 매체가 아닌 무대 공연에서도 실감 날 수 있었던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초 토니 어워즈 연출상을 받았던 여성 연출가 줄리 테이머 덕이다. 배우들이 쓴 퍼펫(동물을 표현한 가면)을 비롯해 의상은 실제 사자, 하이에나, 혹 멧돼지, 미어캣, 코뿔새와 흡사했으며, 아프리카 숲 정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무대 역시 환상적이었다. 동물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안무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또 애니메이션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명곡 ‘캔 유 필 더 러브 투 나잇’(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더 서클 오브 라이프’ 등 역시 관객들을 추억으로 이끄는 동시에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라이온 킹’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28일까지 공연되며, 4월부터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사진제공=클립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