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책의 미학을 살리기 위해 한길사와 한길책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큰 책 시리즈’의 두 번째 책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하 ‘도레가 그린 신곡’)이 출간됐다. 책에는 스물셋 되던 해에 단테의 ‘신곡’을 읽고 거기에 묘사된 장면을 삽화로 재현한 지옥(75점), 연옥(42점) 천국(18점) 등 모두 135점이 수록됐다.
14일 중구 순화동천에서 열린 ‘도레가 그린 신곡’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이 책을 번역한 박상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는 “큰 책이라는 것은 도레의 그림을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그림을 앞에 두고 음미하고 시간을 가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며 요즘 보기 힘든 판형(300*370mm)의 이 책에 대한 의미를 강조했다.
특히 박 교수는 중개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역설하며 그림과 글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 밝혔다. “단테와 도레를 잇는 그런 역할을 한다. 독자이면서 관람자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문자와 그림을 같이 비교하는 경험이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잘 살려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레의 그림에 해당하는 신곡의 그림을 어떻게 정할지 신경을 많이 썼다. 도레는 단테의 글을 아주 찰라적으로 재현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핵심적인 부분을 짚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단테의 문체를 선택할 때는 응축되는 부분을 가져와야 했다. 한 줄, 세 줄, 여섯 줄이 그대로 그림에 정확하게 반영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박 교수는 그의 설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맨 앞 부분에 수록된 ‘숲’을 인용하며 설명을 하기도 했다. “‘우리 살아가는 발길 반 고비에 나는 어느 어두운 숲속에 서 있었네 곧은 길이 사라져버렸기에’ 책은 그림을 꼼꼼하게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도레가 그린 것을 보면 어두운 숲에 서 있다는 것이 이미지나 현장감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어둠 숲속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음미하게 한다. 이 문자가 주는 울림과 의미를 깊이 파헤치게 만든다. 도레 그림이 주는 효과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숲이구나, 이런 느낌이구나, 문자에 대입해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또 박 교수는 기존의 단테의 ‘신곡’은 의역이 많은데 이번에는 원문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신곡’을 번역한 적이 있지만, 다시 번역을 했다. 원문의 맛을 가능한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도레가 그린 신곡은 한정판으로 500권만 만들었으며, 한 권에 25만 원이다. 책을 쉽게 만드는 풍토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책은 예술과 미술로 접근해야 한다”며 “몇 년 후에도 이런 책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 이 책의 배가 되는 책도 만들고 싶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만들 수 있는 크기로는 이게 제일 크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이어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 셰익스피어 한정판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이제 책도 리미티드 에디션이 중요한 시대다. 책이 너무 흔한 시대 아닙니까. 중국에서는 셰익스피어 전집이 한정판으로 출간됐는데, 그게 없어서 못 팔고, 원래 가격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에 팔린다고 한다. 우리 이 큰 책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