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육이 30년 전에 비해 근본적으로 뭐가 달라졌습니까. 이스라엘의 테크니온대학이 지난 20여년간 1,600여개의 벤처를 세워 총 10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포스텍은 앞으로 20년간 적어도 500개쯤의 벤처를 세워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고 합니다.”
지난해부터 신입생 전원을 무학과(無學科)로 뽑아 폭넓게 교양교육을 시킨 뒤 4학기부터 전공을 선택하고 이후 변경도 자유롭게 허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실험에 나선 김도연(66·사진) 포스텍(포항공대) 총장. 청년 취업난을 타개하고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학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8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시간가량 그를 만났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인터뷰 내내 세상의 급격한 변화와 저출산·고령화 등을 들어 대학의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했다. 인재양성과 연구기능에서 나아가 산학일체를 통해 창업(創業)·창직(創職)을 하고 사회·경제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담=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우선 그는 2018학년도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미달되는 등 ‘이공계 위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학이 산업시대에 요구됐던 인재를 계속 양성하는 현실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래를 살아갈 학생을 과거와 같이 교육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던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의 말을 심각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이 급격히 줄어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이공계 석박사 과정이라고 별 수 있겠나.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방식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공계 교육이 30년 전에 비해 뭐가 달라졌는가. 문과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며 “지금 학생들은 120세까지 살 텐데 졸업 후 90세까지 일해야 한다. 직장을 다섯 번은 바꾸고 은퇴 후에도 수십년 더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전공 지식에만 집착하지 말고 폭넓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은 새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에 달했다. 미국은 전체의 4%에 불과한 벤처가 신규 일자리의 절반을 창출한다. 굉장히 많은 학생이 벤처에 취업한다”며 “젊은이가 도전적으로 벤처를 만들도록 대학이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대학이 많이 뒤처져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실제 2016년 기준 대학의 기술이전 수입을 보면 포스텍이 1등을 차지했지만 51억원이고 서울대 48억원, 고려대 36억원, KAIST 27억원, 연세대 18억원에 그쳤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의 연간 특허수입이 2,000억원가량이고 중국 칭화대와 베이징대가 각각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조차 힘든 현실이다.
그는 “대학은 유난히 심한 폐쇄적 문화를 빨리 허물고 기업과 손을 잡아야 한다”며 산학일체론을 폈다. 학교 산학협력 공간도 ‘산학일체센터’로 명명했다. 그는 “지난해 초 포스텍1호펀드(550억원)를 만들어 바이오, 헬스케어, 정보기술(IT) 등에서 펀딩이 손쉽게 이뤄지게 하고 있다”며 “현재 100억원 정도 집행했는데 앞으로 포스텍 공학박사는 3분의 1은 창업했으면 한다”고 했다. 정부도 연대보증제 폐지 등 중국처럼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포스텍은 지난해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와 ‘미래도시오픈이노베이션센터’를 만들어 외부 기업과 타 대학, 공공기관과 공유하고 있다. 연세대와는 각각 수십명씩 교수를 겸임시킨다. LG디스플레이의 전문가 2명을 이미 교수로 임용하는 등 기업 출신 정교수도 늘릴 계획이다.
올들어서는 포스코와 함께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에 벤처밸리 조성에도 나선다. 포스코가 1조원을 투자하고, 포스텍은 기술을 내놓고, 시는 정책지원을 한다. 그는 “굉장히 새로운 브레이크스루(돌파구)가 될 것이다. 현재는 시·산·학(市産學)이 함께 기획하는 단계인데 박성진 교수가 휴직하고 이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포스텍 이사장이기도 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애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롤모델로 삼는 대학이 있느냐’고 묻자 이스라엘의 테크니온대학을 꼽았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도 몇 명 나왔지만 무엇보다 20여년간 세운 1,600개의 벤처 중 여전히 40%가 살아남아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있다”며 “포스텍은 1986년 개교해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지만 앞으로 20년간 500개 이상의 벤처를 세울 것”이라고 포부를 피력했다. 시가총액이 2조원가량인 제넥신을 비롯해 포스텍이 지난 30여년간 150여개의 벤처를 배출했는데 이를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포스텍은 교수가 300여명, 학생은 총 3,400명(학부 1,300명, 대학원생 2,100명) 규모다.
그는 “지난해부터 신입생을 전공별로 뽑지 않고 단일계열로 선발해 3학기까지 교양을 폭넓게 익히도록 한 뒤 4학기 때 원하는 학
과로 모두 받아줄 것이다. 이후에도 학생이 원하면 지도교수 승인 없이도 바꿀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파격적인 실험을 하면 반발이 심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미국 스탠퍼드대는 컴퓨터과가 교수 120명에 학생 550명이다. 자유전공제를 하는 과정에서 학과별 학생수 문제는 대학이 극복해야 한다”며 “우리의 공급자 중심 교육은 테뉴어(정년보장 교수) 제도에 맥이 닿아 있는데 이는 급변하는 사회에 맞지 않는다. 수요자 중심 교육에서는 문사철(文史哲·문학·역사·철학)이 쇠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역사학과가 30명 뽑다가 20명 된다고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스텍은 3년 전부터 겨울방학을 줄이는 대신 여름방학을 3개월로 늘려 학생들에게 사회경험(SES·Summer Experience in Society)을 하도록 한다”며 “남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인문사회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학자인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를 인문사회학부장으로 초빙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전문연구요원제도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박사과정 학생은 이공계 연구의 꽃봉오리인데 군 복무로 공백이 생기면 꽃이 피기 힘들다”며 “연 2,000명가량 혜택을 받지만 서울대도 박사과정 중 혜택받는 비율이 50%도 안 된다. 선발되기 위해 연구보다 영어시험 공부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KA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은 법으로 혜택을 받고 포스텍도 지역 할당제가 있어 웬만하면 되지만 서울의 주요대학은 절반도 안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연구개발(R&D)과 교육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시작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는 쓴소리도 했다. “혁신을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잡아도 매번 리셋하는 것은 엄청난 낭비이고 결국 제자리 뛰기가 된다. 문재인 정부도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는 이어 “과기 연구자는 자기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기에 지원이 부족하거나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불만이 쌓인다”고 했다.
그는 올해 20조원이 넘는 정부 R&D에 관해서도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는 “연 8조원을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쓰는데, KIST가 무슨 연구를 잘하는가는 스스로 잘 안다. 연구비를 블록으로 주면 된다”며 “정부가 큰 원칙하에 과기정책을 펴되 세부과제까지 정해서는 안 되고, 3년의 원장 임기도 5년이나 10년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남북 과학기술 교류와 관련해 “북한의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해 더 잘살게 도와줘야 한다. 포스텍도 같이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정리=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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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부산 △1974년 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 △197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석사 △1979년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 재료공학박사 △1982~2008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2005~2007년 서울대 공대학장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2008~2011년 울산대 총장 △2011~201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2013~2014년 일본 도쿄대 특임연구원 △2015년~ 포스텍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