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스페인 그라나다의 이국적인 풍경과 게임이라는 소재를 접목해 지금까지 없던 판타지 작품을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인’, ‘더블유’(W) 등 송재정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극 후반부로 갈수록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이 이어지며 아쉬움을 남겼다.
21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일 오후 9시 방송된 tvN 주말극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마지막회 시청률은 9.9%를 기록하며 케이블·종편 포함 동시간대 1위로 종영했다. 최종회에서는 유진우(현빈)가 ‘천국의 열쇠’로 게임 버그들을 없애고 홀연히 사라졌지만 극 마지막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남긴 채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렸다. ‘인현왕후의 남자’(2012)와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2013), ‘W’(2016)에 이어 또 하나의 실험작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남긴 송재정 작가는 “‘포켓못 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상현실이 현실을 압도할 수 있는 두려움을 드라마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송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증강현실 게임을 선택해 게임 속 세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무엇보다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수준급의 컴퓨터그래픽(CG)이었다. 드라마 속 CG는 작가가 구상한 ‘마법의 도시’에 숨을 불어넣었다.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궁부터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다양한 곳이 게임의 무대가 됐고 각종 근·현대 무기와 NPC(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다. CG가 완성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없이 연기해야 했을 배우들 열연도 빛났다. 특히 주인공 현빈은 액션이면 액션, 로맨스면 로맨스까지 모두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며 극을 견인했다. 그와 호흡을 맞춘 박신혜를 비롯해 박훈, 김의성, 이승준, 민진웅 등의 연기도 안정적이었다. 그는 “‘포켓몬 고’를 하면서 더 고차원적인 증강현실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무서웠다”며 “완벽한 가상캐릭터가 나오면 애인이나 친구도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내용처럼 증강현실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살의가 표출되면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일이 생길 것 같았다”고 했다.
송 작가는 “16부작 드라마는 16개의 엔딩을 미리 정하고 쓴다”며 “캐릭터는 그대로 가져가되 매번 30분 이내에 완결을 내야 하는 시트콤에 익숙해져서인지 드라마를 쓸 때도 1시간짜리 영화를 쓴다는 기분으로 엔딩이 정점을 찍고 그게 이어나가도록 풀어나간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AR 게임 소재 드라마로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는 1회 시청률 7.5%로 시작해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했다. 다만 지금껏 본 적 없는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끝까지 이어나갈 만한 동력과 템포가 약했다. 이야기를 수습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송 작가는 “시즌물로 가는 게 더 맞았나 싶기도 했고, 기승전결로 가는 16부작보다는 짧게 가는 것이 나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보완과 발전이 필요하겠지만 송 작가는 매번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고 끊임없이 실험하는 만큼 다음에 또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되는 작가다. 스스로를 ‘이상하고 낯선 혼종의 이야기를 짠다’고 말하는 송 작가는 “끊임 없이 호기심을 가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코미디를 하고나니 판타지도 하고 싶고, 드라마도 하면서 확대됐다”며 차기작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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