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역할의 연기를 했지만 연기를 하는 내내 저희 엄마 생각을 했다. 보통은 ‘나라면 어땠을까’하고 연기하는 것과는 달랐다. 시나리오를 볼 때도 그렇고 연기하면서도 ‘아, 우리 엄마가 이렇게 나를 힘들게 키웠겠구나, 우리 엄마는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공감하면서 연기를 했었다. 홀로 나와 여동생을 키운 엄마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연기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유호정은 영화 ‘써니’ 이후 8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했다. 각박한 사회에 위안이 되고,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다 보니 공백기가 길어졌다고 했다. 최근 수위 높은 내용의 시나리오만 들어와서 고민이 컸던 찰나 들어왔던 시나리오이다. 이 영화라면 제대로 따뜻한 엄마 얘기를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선택한 작품이다.
“자극적인 소재보다 소소하지만 따뜻한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딸이 유괴 당한 엄마 역이나, 딸이 성폭행 당한 엄마 같은 강한 역할이 많이 들어왔는데, 그런 역할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쉽게 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몇 달간 그런 캐릭터의 감정에 빠져 살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더라. 그래서 다음 작품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
유호정은 시나리오를 보는 내내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엄마’라는 단어다. 그는 “10년만 더 살아계셨으면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 재롱 피우는 모습도 보셨을 텐데… 너무 일찍 가셨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게 참 안타까웠다.”라고 털어놓기도.
“영화 속 상당수 장면들이 실제 제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지금의 제 마음이기도 하다. 장미와 현아가 사는 반지하방에 빗물이 들어차 가재도구들이 다 젖는 장면은 실제로 중학생 때 비슷한 일을 겪어서 더 공감이 갔다. 어린 시절에 당연한 줄만 알았던 엄마의 선택, 말과 행동들에 대해 진심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 ”
그는 “그대 이름은 장미’는 감히 효도할 수 있는 영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영화에 관심을 당부했다. 실제로 어른이 되어 세상 풍파에 맞서 오지랖 1등 아줌마가 된 장미와 그녀의 딸로 나오는 현아(채수빈)의 현실 돋는 모녀 케미는 마치 우리 집을 훔쳐보는 듯한 공감웃음을 선사한다. 유호정 역시 작품 자체의 따뜻함으로 인해 밝고 희망찬 느낌을 받아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영화를 보고나면 ‘엄마에게 잘 해야지’란 마음이 절로 들 것이다. 저 역시 효도 장려 영화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대 이름은 장미’는 중년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구성을 선보여, 전작 ‘써니’와 비교될 가능성도 높았다. 이에 대해 유호정은 “비교되는 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만, 좋은 작품과 비교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소신을 전했다. 무엇보다 스토리의 접근 및 감정선이 달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단다.
‘’써니‘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며 찬란했던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라면 우리 영화는 한 여자의 일대기다. 자신의 꿈과 사랑을 접을 만큼 아이를 지키고 싶었던 엄마의 이야기인 점이 다르다. 아이들이 그 어린 감성을 모르는데 젊은 아이들이 ’써니‘를 보고 좋아했듯 이번 작품도 그럴 것 같다. 저희 딸도 ‘써니’를 보면서 좋아하더라. 그걸 보면서 ‘그대 이름은 장미’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자신감을 얻었다.“
유호정은 결혼 24년차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배우 유호정 이재룡 부부는 연예게 대표 잉꼬부부로 불린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던 유호정은 남편 이재룡이 변함없이 친구처럼 든든하게 옆에 있어줘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 내가 일할 땐 남편이 쉬고, 남편이 일할 땐 내가 쉬었다. 그래서 지금껏 편하게 연예계 일을 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잉꼬부부라고 해주시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다. 내가 살갑게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다. 남편은 동반자로서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친구 같은 엄마”를 꿈꾸는 유호정은 열여덟 살 아들, 열다섯 살 딸을 두고 있다.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따뜻한 ‘밥’을 정말 열심히 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짜 엄마의 모습이 느껴졌다. 최근엔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엄마의 레시피를 하나 하나 기억해내, 수십포기의 김장김치를 담궜다는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은 ‘엄마’로서 좀 더 많은 걸 해주고 싶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제가 제일 그리웠던 건 바로 엄마의 손맛이더라. 희한하게 엄마가 해주던 그 반찬이 계속 생각나더라. 그게 서운해서 엄마의 레시피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연말 파티처럼 하고 그랬다. 물론 김장한 그날은 진짜 힘들지만 행복하다. 힘들지만, 그게 제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기쁨이고, 아이들에겐 소중한 음식이자 추억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으니 하게 된다.”
한편 ‘그대 이름은 장미’는 지금은 평범한 엄마 ‘홍장미’(유호정) 씨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 그녀의 감추고 싶던 과거가 강제소환 당하며 펼쳐지는 반전과거 추적코미디다. 지난 16일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