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2주 가량 앞두고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한 코미디 영화가 대격전을 벌인다. 이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형사들이 마약 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개업한 치킨집이 전국 맛집으로 등극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영화 ‘극한직업’이다. 영화 ‘스물’ ‘바람바람바람’ 등을 통해 코미디 장인으로 거듭난 이병헌 감독과 뻔뻔스러운 상황 코미디의 대가 류승룡의 만남은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미리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하나로 모아진다. ‘반갑다. 류승룡표 코미디의 귀환’.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룡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류승룡을 배려해준 대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상황과 타이밍을 이용하는 코미디, 시치미 코미디, 꺾기 코미디 등 나의 전공 분야가 다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류승룡은 직장에선 상사에게, 집에선 아내에게 구박받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잘 나가는 후배들에게 밀리는 만년 반장 ‘고반장’을 연기했다. 맏형 류승룡을 중심으로 마약반 ‘독수리오형제’를 이루는 이동휘, 진선규, 이하늬, 공명 등 다섯 명의 호흡은 빈틈없이 완벽하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부터 눈빛까지 어디에도 빈틈이 없다. 어디까지가 애드리브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증이 일 정도다.
“처음 이병헌 감독을 만났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겠다’고 하더라고요. 반신반의했죠. 그런데 대본을 봤더니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을 내버려두질 않는 거예요. 워낙 설계가 잘 된 시나리오였어요. 시사회, 쇼케이스 등을 통해 영화를 반복해서 보다 보니 연령대별로 웃음 포인트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이걸 다 계산했다면 이병헌 감독은 정말 천재 아닐까요.”
마약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로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인데 묘하게 서민들의 가슴을 건드린다. 졸지에 치킨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마인드를 탑재한 형사들이라는 설정부터 겉보기엔 오합지졸 같던 이들이 각자 숨겨진 필살기를 발휘해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모습은 빈틈 가득한 보통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마약반 만년 반장 캐릭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소상공인 대표이기도 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하는 우리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이런 인물이 나를 대신해 싸운다는 생각 자체가 관객들에게 개운한 맛을 주는 것 같아요.”
23일 ‘극한직업’ 개봉에 이어 25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킹덤’이 190개국에 동시 스트리밍 된다. 조선시대판 좀비 스릴러인 ‘킹덤’에서 류승룡은 조정 실세 역할을 맡았다. 다음 달 7일에는 킹덤 시즌2 크랭크인까지 앞두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영화에는 세계 관객들이 기대하는 특유의 미장센(화면 미학)이 있잖아요. ‘킹덤’을 통해 한국 사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통성 있는 이야기의 힘에 미장센까지 전세계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특히 영어를 하지 않아도 27개 언어로 된 자막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하하하.”
그의 나이 올해로 쉰이다.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중압감이 가득했던 20년 전과 달리 지금은 편안하단다. “처음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게 후유증도 남고 힘겨웠죠. 하지만 이제는 해온 작품보다 앞으로 만날 작품이 더 많으면 좋겠어요. 늘 기대 이상의 이야기가 저에게 왔죠. 제가 할 일은 그릇을 넓게 만들어서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인생을 담을 준비를 하는 것 아닐까요.”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