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 초격차 전략 가동하고
규제 맞선 디지털 혁신 주도해야
기업경쟁력은 위기에서 빛 발해
정부도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
얼마 전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들의 청와대 회동이 재계의 화제다. 그중에서도 반도체의 위기를 놓고 오간 대화가 단연 주목을 끌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반도체 시황에 대한 질문을 받고 좋지는 않다면서도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앞서 이 부회장은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서도 “위기는 항상 있을 것이고 꿋꿋이 헤쳐나가겠다”고 했다. 삼성 특유의 시장 주도자로서의 강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집중과 선택의 문제”라며 “기업이 성장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대통령의 화답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주변에서는 청와대와 재계가 나라 안팎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결의를 다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는 이들이 많다. 우리 경제의 양대 축인 대통령과 그룹 총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 비전을 논의하는 것만큼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다.
국내 반도체 수장들의 발언이 회자되는 것은 탄탄한 실력과 압도적인 성과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로서는 반도체 기업들이 위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제대로 대처하겠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기업들은 위기일수록 오히려 대규모 투자에 나서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려왔다. 지난 2009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는 과정에서 일본이 고전하고 있을 때 우리 기업들은 앞다퉈 사상 최대의 실적을 일궈냈다. 조선업은 역대 최대의 수주실적을 올렸고 자동차도 위기 극복의 효자 노릇을 해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나라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존 제조업 일변도의 수출주도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도외시한 채 현실에 안주해버린 것이다.
위기에는 항상 기회가 따르는 법이다. 요즘 잘 나가는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당시 금융위기를 헤치고 탄생한 거대 유니콘 기업이다. 이들은 새로운 시장을 앞장서 개척하고 낡은 규제와 싸워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위기를 발판으로 성장기회를 포착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로 소비자를 끌어들여 남들과 근본적인 격차를 만들어낸 셈이다. 진짜 실력은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한다는 말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은 저서 ‘초격차’에서 급변하는 상황 변화에 대비하는 리더의 유연한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새로 들어선 정부가 경제운용 방식을 바꿨다면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경영환경의 변화로 빨리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경영 방식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근로시간이 조정됐다면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던 노동생산성에 대해 재평가를 실시하고 더 효과적으로 근로시간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선제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경영환경이나 잘못된 관행을 탓하는 기업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해 달성한 사상 최대의 수출실적이나 국민소득 3만달러를 성과라며 내세우고 있다. 그래놓고 안 좋은 지표는 이전 정부나 경제 구조 탓으로 돌리고 있다. 대부분 국민이 정부의 진짜 실력에 의구심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찾아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정부가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리스크를 줄여주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영의 귀재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호황은 좋지만 불황은 더욱 좋다”고 설파했다. 그는 리더가 폭풍우를 이겨내겠다는 용기를 갖고 위기 너머의 새로운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제 우리 경제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기업이든 정부든 국민에게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