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포스코리아는 각종 에너지 솔루션 주요 부품을 개발·제조하는 기업이다. 이미 국내에서 다수의 굵직한 사업 레퍼런스를 확보하며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김성엽 댄포스코리아 대표를 만나 친환경 시장,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고 있는 이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을 들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지난해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를 비롯한 각국 정상들 앞에 섰다. 그리고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다. “국가나 공공 부문의 노력만으로 기후변화 같은 지구 전체의 의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각 대륙의 다양한 회원국과 시민사회, 산업계가 참여한 P4G 파트너십 프로젝트에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중략) 대한민국 역시 지속가능한 성장,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 P4G의 정신과 실천을 지지하며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
이날 행사는 덴마크 정부가 글로벌 차원으로 전개하고 있는 P4G(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의 정상회담이었다. 덴마크는 북유럽,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기후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온 국가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부터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갖고 이와 관련된 정책을 준비했다. 또 2050년 이후 ‘화석연료 0%’를 달성하겠다는 국가 비전 하에 친환경 에너지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지구촌 친환경 에너지 강국으로 우뚝 선 덴마크 내에서 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댄포스(Danfoss)다. 지난 1933년 냉각 시스템을 위한 팽창밸브 ‘1인 제조사’로 출범한 댄포스는 이후 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전 세계 3만 여 명, 70여 개 공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댄포스는 한국 시장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02년 한국시장에 법인을 설립한 후 국내 주요 대기업에 각종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 부품을 공급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이후에도 기술 및 제품고도화, 트렌드에 부합하는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을 선보이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초, 서울 중구 댄포스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김성엽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댄포스는 한국에 법인을 설립한 2002년 이전에도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직영 총판 개념으로 제품을 국내 기업에 공급했었죠. 그러다 2002년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돌입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한국 지사 연 매출은 약 1,000억 원 정도인데, 이는 댄포스가 진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중국·인도 제외)에서 발생하는 총 매출의 약 25% 수준입니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이 지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댄포스 주력 사업군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인프라(Infrastructure) ▲식품공급(Food Supply) ▲에너지 효율(Energy Efficient) ▲친환경 솔루션(Climate Friendly Solution) 이다. 이 분야에서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미래 성장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댄포스의 당면 목표다. 각 지역 지사들도 이 같은 목표 아래 지속 가능한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댄포스코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댄포스코리아는 한국 시장 상황에 부합하는 전략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김성엽 대표는 말한다. “저희는 전반적인 경기(景氣)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건설업, 조선업, 유통업 등 산업 업황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달라지죠. 이들 사업군에서 주로 저희 솔루션 혹은 부품을 사용하니까요. 다행스러운 건 지난 수년간 경기가 썩 좋지 않았음에도 한국의 GDP 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의 성장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지사도 몇 곳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향후 전망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 한국시장에서 또 한 번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 전망은 김성엽 대표의 독특한 이력과 묘하게 연결돼있다. 김성엽 대표는 댄포스코리아 합류 전, 미국 IT 기업 IBM과 프랑스 에너지 관리 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에서 일했다. IT와 전기라는 전혀 다른 이종 직업군에서 약 20여 년 간 근무를 했다.
사실 이직을 하는 대다수 직장인들은 새로운 곳에 보다 쉽게 적응하기 위해 이전 경력과 경험을 살리길 바란다. 완전히 낯선 기업으로 이직을 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낯선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면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는 “원래부터 호기심이 많았다”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호기심의 힘’으로 선택한 도전이 결코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직종에 대한 무지(無知)보다 더 큰 것이 그를 가로막았다.
김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IT 업계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매일 새로운 트렌드가 양산되고 기술적 진보가 일어나는 역동적인 시장입니다. 반면 당시 슈나이더가 주력하고 있던 전력이나 제어 같은 분야는 육중하고 단단하면서도 안정적인 반면, 뭔가 IT 분야 만큼의 역동성이나 새로움은 부족한 시장이었죠. 그렇다 보니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제가 기술이나 제품에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닌, 고객들과의 접점을 찾는 업무를 맡았다는 것이었죠. 자연스럽게 고객들과 소통하고 공부해나가면서 이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전혀 다른 산업에서 쌓았던 20여 년의 경험이 현재 댄포스코리아의 미래 전략 수립과 운영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댄포스코리아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시점에 직면했다. 물론 댄포스코리아는 앞서 언급했던 4개 사업군 모두에서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는 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에 더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다.
우선 댄포스코리아는 ‘스마트 빌딩’과 ‘콜드 체인(Cold Chain)’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찍었다. 경기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폭발적인 성장세도 기대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스마트 빌딩’과 ‘콜드 체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마트빌딩은 앞서 언급했던 김성엽 대표의 경험을 100% 활용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스마트빌딩은 건축, 통신, 에너지 효율 등 다양한 측면에서 최첨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빌딩을 일컫는다. 당연히 최첨단 IT 기술, 전기 솔루션 등은 스마트빌딩 건설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IBM과 슈나이더에서 IT와 전기 분야를 경험한 김성엽 대표는 현재 스마트빌딩 시장을 눈여겨보며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말한다. “현재 국내에 있는 재건축 대상 빌딩(거주 목적 빌딩 제외)은 약 70만 개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들 모두가 당장 재건축을 해야 하는 건 아니죠. 허가와 심의를 거쳐 선별된 빌딩만 재건축 사업에 들어갑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매년 약 2만 개 정도가 재건축 승인을 받고 건물 재설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건축 승인이 난 건물들은 모두 저희의 타깃 고객이고,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70만 개 빌딩은 댄포스코리아의 잠재 고객인 셈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재건축, 혹은 새롭게 빌딩을 짓는 건설사들이 대부분 스마트빌딩 콘셉트를 염두에 두고 설계를 시작한다는 부분이에요. 이는 분명 저희 회사에 긍정적인 시그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빌딩 시장에서 댄포스코리아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솔루션은 ‘HVAC(Heating Ventilating and Air Conditioning, 난방·환기·공기 조절) 전용 드라이브 솔루션’이다. 이 시스템은 최적의 냉난방 밸런싱과 최적화된 온도 제어로 에너지 소비 절감은 물론,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당연히 ‘탄소 감축’이라는 글로벌 차원의 기후환경 전략에도 부합하는 솔루션이다.
이 솔루션이 탑재된 가장 대표적인 빌딩이 바로 서울 잠실에 우뚝 서 있는 ‘롯데월드타워’다. 현재 롯데월드타워에는 댄포스의 HVAC 전용 드라이브 솔루션이 설치돼 운용되고 있다. 댄포스와 롯데 측은 모두 이 솔루션에 대해 효과가 기대 이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월드타워는 댄포스 솔루션을 통해 매년 5,040MW의 전력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 또 경쟁사 대비 절반의 크기와 무게로 ‘하이엔드 공조 시스템’을 구축해 공간 효율성 측면에서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다.
김 대표는 “특히 롯데월드타워는 지난해 6월, 전 세계 최초로 친환경 건물 인증에서 ‘LEED 골드 등급’을 획득해 건물의 안정성과 친환경성까지 인정받았다”며 “댄포스 솔루션은 롯데월드타워 뿐만 아니라 국내 많은 스마트빌딩에서도 이 같은 역할을 중추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콜드체인(Cold Chain·신선한 식료품을 생산지에서 가정까지 선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배송하는 방식) 분야에서도 댄포스는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댄포스의 천연냉매 기술을 도입한 홈플러스는 지난 5년간 이산화탄소 배출량 45% 감소, 에너지 효율 50% 향상에 성공하며 ‘댄포스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김성엽 대표는 말한다. “앞으로도 스마트빌딩, 콜드체인 분야에 집중해 시장 경쟁력을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물론 새로운 시장 개척에도 집중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나라 전통적 효자 산업인 ‘조선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항해 중 전기 효율성을 높이는 솔루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거든요. 조선업이 불황이라곤 하지만, 언제든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지난 2017년 7월 댄포스에 합류한 김성엽 대표는 이후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선택과 집중’으로 경쟁력을 키웠고, 활발한 대외활동을 통해 에너지 효율과 절감의 필요성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여전히 ‘이 회사는 변화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직원들이 낯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문화가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다고 믿고 있는 만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댄포스코리아 조직에 심는 것을 올해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기대하는 또 하나의 변화는 가시적인 성과다. 에너지 절감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기업들이 갖게 된 만큼, 지금이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적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사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는 저희의 완전한 패키지 솔루션이 아닌 일부 부품과 시스템이 들어간 사례입니다.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레퍼런스이긴 하지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잖아요. 올해는 저희의 모든 솔루션이 하나의 패키지로 건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실제로도 제주도에 건설 중인 호텔 몇 곳에 댄포스 제품이 패키지로 들어가 있기도 하고요. 저희 댄포스코리아는 올해를 국내 대표 에너지 효율 솔루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도약의 해로 삼을 생각입니다. 스마트빌딩과 콜드체인, 나아가 에너지 절감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동참하고자 하시는 기업 관계자분들이 계신다면, 저희 댄포스와 손잡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