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 것은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내년부터는 조선업 수익성이 정상화할 것으로 진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860만CGT로 전년보다 20%가량 늘었다. 이 중 한국 업체는 1,263만CGT로 절반에 가까운 물량을 따냈다. 지난 2011년 이후 7년 만에 중국을 제친 것으로 국제수주시장 점유율도 2011년 40.3%에서 지난해 44.2%로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선 전체 발주량 70척 중 66척(94%),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39척 가운데 34척(87%)을 수주하는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중국은 신뢰성이라는 부분에서 한계를 보였다”며 “해외 선주사들이 한국 조선사들의 높은 기술력과 제품 신뢰성, 안전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가가 낮았던 게 문제였다. 발주량은 회복세를 보였지만 수주를 따오는 계약선가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증가세를 쫓아가지 못했다. 유가 하락 등으로 발주량이 부족했던 것도 원인이었지만 한국 업체들의 과당경쟁도 선가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빅2 체제로 재편하려는 가장 큰 이유도 출혈경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발주량에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는 게 현대중공업의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술력이 비슷한 조선 3사가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선가가 떨어지고 수익성 회복이 더뎠던 측면이 있다”며 “기술력을 공유하고 건조가 표준화하면 비용도 절감되고 수익성이 크게 좋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성립 사장이 지난해 5월 기자간담회에서 “빅2 체제가 국가 산업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정 사장은 당시 “궁극적인 목표는 작지만 강한 회사를 만들어 앞으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곳이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며 “어떤 형태로 가든 세계 조선 시황, 중국과의 경쟁, 산업의 진로를 볼 때 빅2 체제가 맞다”고 말했다.
규모의 경제도 가능해진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량 1위는 1만1,145CGT를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이다. 2위는 대우조선해양으로 5,844CGT다. 두 회사의 수주잔량을 합치면 1만6,989CGT로 3위인 이마바리(5,243CGT)보다 세 배 많고 4위 삼성중공업(4,723CGT)과 비교하면 네 배에 달한다.
특수선 건조 등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산은 각각 차별화된 분야가 나뉘어 있는 전문화 경향이 강하다”며 “겹치는 부분이 없어 합치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20년째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해야 한다면 방위산업 때문에라도 국내 업체에 넘어가야 하고 이를 인수할 수 있는 업체는 현대중공업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과거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한화그룹·포스코그룹·GS 등도 대우조선에 관심을 보였지만 현재는 현대중공업 외에는 마땅한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3·4분기 기준 현대중공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7,000억원가량이다. 100% 현금은 아니지만 자금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이익잉여금도 16조4,0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 보유지분 55.7%의 30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약 2조1,000억원 수준으로 현대중공업이 충분히 인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조선업 장기불황에 따른 기업가치 등을 고려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부담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조선업황 전망을 밝게 보고 승부를 건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국책은행 입장에서 방위산업을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이 인수한다면 다양한 리스크와 부담을 덜 수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해온 금융권도 일찌감치 조선 빅2 체제에 대한 고민을 내비쳐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매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상선·해양플랜트·방산 부문을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현대중공업이 인수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나는 만큼 분리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방산 부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형모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해양의 방산 수주잔액은 5조원을 상회하는 만큼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해군이 추진하고 있는 핵추진잠수함도 대우와 현대만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