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철수칼럼] 루스벨트의 교훈

논설실장

동북아 군비경쟁·북핵 위협고조에도

우리는 아무런 대비 없이 평화타령만

"스스로 위해 싸울 의지·능력 없으면

지배당하고 만다"는 충고 새겨들어야




제26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국제무대에서는 강한 나라만이 살아남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1901년 대통령에 오른 루스벨트는 미국을 강대국의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 해군력 강화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보면서 그의 임기가 끝날 무렵 미국 해군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안보에 대한 루스벨트의 생각이다. 그는 “스스로를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은 싸울 능력과 의지를 갖춘 타인에게 의해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루스벨트는 “평화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쟁준비”라는 신념을 실천한 덕분에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발휘한 첫 번째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118년 전 미국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지금 우리의 안보와 관련해 곱씹어볼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요즘 우리에게 과연 안보를 지킬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걱정스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발간된 국방백서부터 보자. 정부는 백서에서 2010년 이후 유지해온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정부가 백서에서 이 문구를 뺄 정도로 북한의 군사 위협이 줄어들었는가. 그렇지 않다. 남북대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위협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서 한반도 적화통일 목표를 여전히 명시해놓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경제난 속에서도 우리의 2배가 넘는 상비군을 유지하고 있고 독자 작전이 가능한 여단도 우리의 4.2배에 달한다. 북한은 남북·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핵 물질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방어훈련인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 데 이어 적 개념도 흐릿하게 설정해놓았다. 정부는 백서에 “대한민국의 주권·영토·국민·재산을 위협하는 세력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넣었다. 이 문구만 보면 도대체 누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군이 과연 우리의 안보를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부족한 것은 의지뿐만이 아니다. 안보를 지킬 능력도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 간에 군비경쟁이 치열하지만 우리나라는 태평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 등은 경기침체에도 사상 최대의 국방예산을 확보해 안보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군비경쟁은 이제 지구를 넘어 우주 공간에서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남북협력에만 신경을 쓸 뿐 군비 증강작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북한의 핵 위협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아직 군사위성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장거리 지대공미사일 개발은 한없이 미뤄지고 있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다. 초계기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국방장관까지 나서 강경 대응을 밝히는 등 감정적으로 대응할 뿐 정작 일본을 압도할 수 있는 군 장비의 현대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많지 않은 예산은 장병 월급 인상 등에 쏟아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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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자체 방어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부족한 부분은 우방국들과 동맹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한데 최근에는 이 동맹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는 북한의 핵 문제 해결 방법을 놓고 엇박자를 낸 데 이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둘러싸고 심각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도 위안부 합의 파기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의 배상판결, 초계기 레이더 조준 등을 둘러싸고 갈수록 틈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미일중러 4개국에 있는 우리의 대사들은 존재감조차 없다. 우리의 외교·안보가 지금처럼 위태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우리 국민 가운데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는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고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루스벨트가 말했듯이 싸울 의지와 능력이 없는 나라는 다른 국가에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안보와 관련해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는 과연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그저 북한을 향해 해맑게 웃고만 있으면 평화가 저절로 찾아온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csoh@sedaily.com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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