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짜장면, 탕수육, 돈가스, 치맥. 고단한 서민들의 입맛을 달래준 대표적인 외식 메뉴다. 단순히 맛있게 한 끼 배를 채우는 의미를 넘어 장면마다 추억과 애환이 서린 ‘국민 음식’이기도 하다.
조리학과 교수이자 중견 셰프가 쓴 ‘배고플 때 읽으면 위험한 집밥의 역사(책들의 정원)’는 이처럼 친숙하고도 맛깔나는 음식들의 역사와 기원, 조리법 등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한국 음식뿐 아니라 카레라이스, 양꼬치, 파스타, 피자, 햄버거, 하몽 등 동서양 음식에 숨은 문화적 담론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삼겹살 대중화의 원동력으로 미국산 옥수수 사료의 세계적 보급과 휴대용 가스버너의 등장을 꼽는다. 옥수수 사료는 양돈산업 육성에 발판이 됐고 돼지고기 유통이 활발해졌다. 1980년대 들어 휴대용 가스버너가 유행처럼 각 가정에 구비되면서 가정에서 간편하게 고기를 구워 먹는 ‘로스구이’가 가능해졌다. 이때 오리고기와 돼지고기의 경쟁에서 삼겹살 부위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가정식 백반을 파는 동네 식당들도 앞다퉈 ‘부루스타’와 ‘라니 선버너’ 등을 들여놓고 삼겹살을 구워 팔았고, 산과 계곡, 유원지 등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인파를 만나는 장면이 흔해졌다.
삼겹살과 함께 한국 양대 대중 음식으로 꼽히는 프라이드치킨은 원산지인 미국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음식이 부족해 늘 배고팠던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이 백인 농장주들이 먹지 않는 닭목과 날개를 튀겨먹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한 프라이드치킨은 냉장 시절이 없던 19세기에도 더운 날 오래 보관할 수 있어 대중적인 음식으로 인기를 얻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 노예들의 음식으로 천시받았지만,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창업과 더불어 남부의 간판 메뉴로 부상했다.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은 국산 쇼트닝과 식용유가 생산되고 밀가루 생산이 느는 동시에 양계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 재래시장에 등장한 ‘통닭’을 유래로 볼 수 있다. 국내 최초의 프랜차이즈 프라이드치킨은 1977년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개업한 ‘림스치킨’이었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양념치킨을 처음 도입한 페리카나 치킨, 멕시카나 치킨 등이 시장을 주도했고 1984년엔 KFC가 종로에 첫 매장을 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맥주는 비싼 음료였으므로 당시엔 통닭에 소주를 먹는 게 보편적이었다. 이후 국민 소득이 오르면서 맥주가 대중화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맥주와 치킨을 함께 먹는 문화가 형성됐지만 ‘치맥’이란 말은 2002년에야 등장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른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기간 우리나라는 축제의 장이었다. 호프집에서 또는 집에서 맥주와 치킨을 시켜놓고 축구를 관전하는 유행이 번졌다. 최근 한류의 확산은 치맥 문화를 동아시아권 전체로 퍼뜨린다.
짜장면의 유래도 궁금하다. 중국식 어원은 볶은 장을 얹은 면 요리란 의미에서 찰장면(炸醬麵)인데, 한국식으로 변형된 중국 요리의 대명사다. 인천 차이나타운이 처음 생길 때 공화춘이란 식당에서 처음 개발한 메뉴라는 게 정설이다. 우리식으로 단맛이 강조되면서 배달 메뉴의 최강자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의 세계적인 음식인 쌀국수(Pho)에는 세계화 과정에는 피비린내 나는 슬픈 역사가 숨어있다. 1975년 월남 패망을 전후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던 남베트남 사람들이 대량 학살을 피해 선박을 타고 나라 밖으로 탈출한다. 이른바 ‘보트 피플’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 약 100만 명이 베트남을 떠나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로 망명을 신청했다. 맨손으로 탈출한 이들이 이국땅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막노동과 음식 장사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베트남 타운인 ‘리틀 사이공’에서 팔던 쌀국수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미국에서 론칭한 ‘포호아’라는 프랜차이즈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포’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명성을 얻는다. /윤서영 인턴기자 beatr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