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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도형 이사장 "저서 '가마니로 본...'은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에 대한 학문의 빚"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대학원 시절 인정식 선생 저서 큰 도움

일제강점기 日의 수탈·농민들 삶 담아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권욱기자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권욱기자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마니로 본 일제강점기 농민 수탈사’는 대중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았고 책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도 있다. 출간 당시 뜻밖의 호응에 김 이사장 자신도 놀랐다고 했다. “팔기 위해 쓴 책도 아니었고, 책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출간 후 두 달 만에 2쇄를 찍었죠.”


대중적인 관심을 받은 이 책이 출간되는 데는 김 이사장의 대학 재학 시절의 인연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대학원 다닐 당시 지도교수께서 농업사를 전공하는 분이어서 농업경제학자인 인정식 선생의 저서를 많이 읽고 리포트를 썼는데 시간이 흘러 인 선생의 딸이자 짚풀생활사박물관장인 인병선씨가 도움을 요청해 흔쾌히 돕게 됐지요.” 이 같은 사연을 전하면서 김 이사장은 “농업경제학자인 인 선생에 대한 학문의 빚을 갚는 의미에서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책 출간 당시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운영하는 인 관장은 자료를 많이 모았지만 정리를 제대로 못해 당시 연세대 사학과 교수였던 김 이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김 이 사장은 자료를 보완하면 박물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책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인 관장은 김 이사장과 함께 이 책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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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마니에 대한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이 실렸다. 1910년대부터 광복 전까지 조선 땅 방방곡곡의 가마니 생산에 관한 신문기사 340건을 엮었다. 일제의 농업수탈 정책이 가동된 시기부터 산미증식계획과 농촌진흥운동을 거쳐 전시체제 하에서 애국의 명분으로 가마니 제작이 장려되기까지, 조선 농가의 부업으로 정착한 가마니 짜기와 이에 종사한 농민 삶의 다양한 모습이 책에 담겨 있다.

김 이사장은 “일제시대 가마니의 여러 가지 사회적 기능 중에서 일본의 수탈 목적이 가장 컸다”고 지적했다. 쌀가마니를 기차에 실어 일본으로 보냈던 만큼 짐꾼들이 효과적으로 싣고 컨테이너에 정확하게 빈틈없이 많이 실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가 중요했다. 그래서 가마니의 크기와 무게가 명확해야 했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는 가마니라는 말이 없었는데 일본어 ‘가마쓰’가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가마니가 됐다고 김 이사장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을 위한, 일본에 의한, 일본의 가마니로 인해 우리 선조들이 겪은 숱한 고난사를 들려줬다. “일제시대에는 어린아이들까지 학교에서 가마니 짜기를 배워야 했어요.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해 가마니를 생산했고요. 심지어 생산대금마저 국가에 헌납해 ‘가마니호’라는 비행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 일까지 있었습니다.”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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