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외관으로 호주 시드니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자리 잡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지난 1955년 국제 현상설계로 탄생했다. 공모전에는 르코르뷔지에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이 총출동했는데 당선의 영예는 뜻밖에 당시 38세였던 덴마크의 젊은 건축가 예른 웃손에게 돌아갔다. 문제는 그의 디자인을 구현하기가 지나치게 어려웠다는 점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거대한 규모와 비정형적인 디자인으로 공사기간은 무려 16년, 공사비는 최초 계획의 10배가 넘게 들었다. 이 지난한 과정에서 웃손은 총괄책임 건축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준공식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초에 웃손의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 채택되지 못했다면, 짓기 어렵다며 반려됐다면 지금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으며 오페라하우스 이사회와 웃손은 화해했다. 그는 2003년 건축계 최고 영예의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유리 구조물로 유명한 일본 도쿄국제포럼 역시 1989년 개최한 국제 공모전에서 당시 45세였던 라파엘 비뇰리의 작품을 선정했다. 비뇰리가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한 것은 공모전으로부터 8년 전인 1981년이었으며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맡기에 규모도 작았다. 하지만 주최 측은 혁신적인 디자인에 더 높은 점수를 줬고 이를 도쿄국제포럼으로 구현해냈다.
조경찬(사진) 터미널7아키텍츠 소장은 국내 공모전에서도 더욱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품 선정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며 이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비뇰리의 사무소에서 8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해외에는 오히려 여러 건축가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 국내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공모전의 성격상 경험이 많지 않아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건축가가 당선되는 경우는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건축가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작동한다”며 “하나의 건축물은 한 명의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좋은 건축물과 도시를 향유할 수 있도록 건축 관련 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함께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