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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사바하'] 기묘한 미장센의 종교 스릴러...'신은 존재하는가'를 묻다

영화 ‘사바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영화 ‘사바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종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라는 개인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환상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스스로 환상을 깨는 것이 자기 해방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장재현 감독의 신작 ‘사바하’는 환상을 넘어 환각 상태에 빠진 이들과 환상을 깨뜨리려는 자들의 팽팽한 긴장을 재료로 만든 영화다.

영화는 악마의 얼굴로 태어난 언니와 함께 사는 금화(이재인), 사이비 종교를 파헤치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오히려 사이비 목사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종교문제연구소장 박 목사(이정재), 박 목사가 쫓는 신흥종교 사슴동산의 비밀을 쥐고 있는 나한(박정민) 등 세 인물을 중심으로 세 갈래 길을 내며 시작한다.

첫 시퀀스는 악의 탄생을 상징하는 검은 염소의 울음소리다. 1999년,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쌍둥이 자매가 태어날 때도, 두 자매가 16살이 되던 해까지도 을씨년스러운 염소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종교문제연구소를 운영하는 박 목사는 불교와 밀교를 뿌리로 한 수상한 종교단체 사슴동산에 주목한다. 강원도 영월의 한 터널에서 입에 팥과 부적을 문 채 살해당한 여중생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사슴동산 법당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법당의 비밀공간에 잠입해 숨겨진 탱화 자료와 경전을 수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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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영화 ‘사바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사슴동산 사람들이 ‘광목’이라 부르는 의문의 남자 나한은 여중생 살인 사건 용의자 김철진에게 알 수 없는 말로 지령을 내린다. 이내 김철진은 자살하고 경찰 수사는 미궁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박 목사는 경전을 단서로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한다. 경전을 쓴 풍사 김제석과 그가 창시한 동방교, 그리고 그가 후원한 소년원의 네 아이와 나한이 주목하고 있는 금화까지 사슴동산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서면서 박 목사는 또 한 번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악귀를 쫓는 사제들의 이야기 ‘검은 사제들’로 한국형 오컬트 영화를 개척한 장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기독교부터 불교, 민속신앙을 아우르는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취재를 바탕으로 정교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첫 장편부터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문법에 대한 이해력과 독창성이 돋보였던 장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묘한 미장센에 카메라 앵글과 사운드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관객들의 심리를 영리하게 요리한다.

영화 ‘사바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영화 ‘사바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비극을 목격하거나 불운의 한가운데 설 때, 권선징악의 믿음이 철저히 배신당할 때 우리는 묻곤 한다. 신은 존재하는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 종교적 가치를 온몸으로 흡수한 장 감독도 이 물음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정재가 연기한 박 목사에 감독 자신이 투영됐다. 지난 13일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장 감독은 “나는 유신론자다. 절대자가 선하다고 믿는데 가끔 세상을 보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지 않아서 좀 슬프다”며 “신은 왜 가만히 있을까,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의심하는 유신론자 박 목사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나직이 말했다. 관객들 역시 박 목사와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답을 주지는 않지만 함께 생각해볼 시간은 주는 영화다. 20일 개봉.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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