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 167. 현대차(005380)그룹의 숙원 사업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프로젝트 부지다. 이 곳의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은 제곱미터(㎡) 당 5,670만원으로 전년 (4,000만원) 대비 41.75%나 올랐다. 지가 상승에다 정부가 형평성 제고를 위해 고가의 상업·업무용 토지 공시지가를 크게 올린 탓이다. GBC 부지의 공시지가 상승률은 전국 평균(9.42%)와 서울 평균(13.87%)를 크게 웃돌 뿐만 아니라 전국 최고 상승률을 보인 강남구(23.13%)에 비해서도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세 부담도 전년 대비 4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경제신문이 대신증권에 GBC 지가 상승에 따른 보유세 상승분 시뮬레이션을 의뢰한 결과 현대차가 올해 내야 할 보유세는 약 290억원으로 전년(205억원) 대비 100억원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가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를 11년 만에 최대인 9.48% 올렸기 때문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속이 쓰리다. 각종 인허가에 발목이 잡히면서 착공은 착공대로 늦어지고 내야 하는 세금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GBC 부지의 공시지가는 현대차가 인수한 후 2015년 ㎡당 2,560만원에서 올해 5,67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 9월 한국전력의 옛 삼성동 부지를 10조 5,500억에 인수한 후 이듬해 1월 곧바로 건축 계획을 발표하는 등 신속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허가가 발목을 잡았다. GBC 프로젝트는 서울시의 건축심의·교통영향평가·환경영향평가와 국토교통부의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데 매번 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또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강남 부동산 가격 인상 억제를 이유로 착공이 지연됐다. 이처럼 지지부진하던 GBC 프로젝트는 올해 초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인허가 최종 단계인 수도권정비심의를 통과시키면서 이제 서울시의 건축허가 등을 거쳐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착공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2일 GBC 부지에 대한 성능 위주 설계를 강남소방서에 제출한 뒤 서울시에 건축허가를 접수했다. 2021년께 준공 예정이었던 GBC는 2024년에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고가 토지 위주로 공시지가를 대폭 인상하면서 기업들이 지방에 소유한 공장 부지의 경우 보유세가 큰 폭으로 늘지는 않았다. 다만 정책·행정적인 이유로 기업들의 공장 건설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업무·상업용 토지에 대한 세금 부담을 높이는 경향을 보이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지난 2012년부터 평택고덕국제화 산업단지에 추진 중인 반도체 공장이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늦춰지고 있다.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5년째 사업은 멈춰 있다. 4개 생산 라인을 갖출 수 있는 평택 반도체공장은 현재는 1개 라인만 가동하고 있으며, 2라인은 내년께 가동될 전망이다. 반도체 라인 증설에 발목이 잡혔지만 부동산 가격은 오름세를 탔다. 관보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위치한 평택시 고덕면 여염리 1646 일대의 지난해 표준지 공시지가는 49만 4,000~5,000원 이었으나 올해 인근 여염리 1648 일대 표준지 공시지가는 61만원으로 20% 이상 올랐다.
LG전자(066570)가 지난 2014년에 부지를 매입한 평택시 진위면 가곡리·갈곶면 일원의 33만 8,500㎡에 달하는 부지도 절반이 안 되는 14만 8,500㎡만 공장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나대지 상태다. 정부의 특별 배정 물량을 배정받아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벗어나 이곳을 공장을 지을 계획이지만 경북, 충청 등 여타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공사가 지연될 위기다. 그 동안 부지의 공시가격은 지난 2016년 ㎡당 90만원에서 올해 185만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보유세 과세표준을 정하기 위해 공시가격을 일정 수준 할인해주는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앞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토지 보유자의 세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올해 85%에서 내년 90%로 올라가며 이후 오는 2022년 100%까지 조정돼 보유세를 깎아 주지 않고 세금을 매기게 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정 지역이나 사안에 대해서만 공시지가를 인상하기 보다는 일괄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며 “세금을 더 거두고 덜 거두고 하는 것은 입법부에서 결정해야 하며 행정부가 할 일이 아니며 특정 지역이나 사안에 따라 차등을 둘 게 아니라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인허가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이 조세 정책으로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됐다”고 말했다.
/고병기·한동훈 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