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내놓은 정부의 브렉시트(Brexit) 계획이 하원에서 부결됐다. 하원은 아울러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방안에도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하원은 14일(현지시간) 오후 정부의 브렉시트 계획 결의안 및 의원들의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했다. 앞서 메이 총리는 지난 13일까지 브렉시트 제2 승인투표(meaningful)를 실시하지 않으면, 이날 향후 계획이 담긴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이 지난해 통과시킨 EU 탈퇴 관련 법령에 따르면 비준동의 이전에 정부가 EU와 협상한 결과는 하원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지난달 15일 브렉시트 합의안 첫 번째 승인투표가 열렸으나 기록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메이 총리가 이번에 제출한 결의안은 이른바 EU와의 ‘안전장치’(backstop) 협의 등이 담긴 정부의 브렉시트 계획을 하원이 지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하원 투표 결과 정부 결의안은 찬성 258표, 반대 303표로 부결됐다. 정부 각료들은 결의안이 부결되면 메이 총리가 향후 EU와의 협상에서 더 어려워진다고 호소했지만 부결을 막을 순 없었다. BBC에 따르면 이날 부결은 메이 총리가 취임 이후 맞이한 열 번째 패배다.
부결 원인은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이 정부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 결의안이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에서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를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번 결의안에 기권을 던졌다.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노 딜’ 브렉시트를 하더라도 영국이 중장기적으로는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노 딜’ 브렉시트 방안을 EU와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둬야 한다는 게 강경론자들의 입장이다.
앞서 영국과 EU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별도로 합의를 맺을 때까지 영국 전체를 EU의 관세동맹에 남게 하는 ‘안전장치’를 두기로 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자 메이 총리는 ‘안전장치’ 수정을 포함해 브렉시트 합의안을 재협상하겠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EU와의 재협상에서 ‘안전장치’에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변화를 가져온다면 하원에서 지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그러나 이날 정부 결의안 부결 직후 “오늘 표결 결과는 총리의 행동 방침이 다수의 지지를 못받는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라며 “정부가 계속해서 의회를 무시하면서 일관성 있는 계획 없이 (브렉시트가 예정된) 3월 29일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원은 정부 결의안 외에도 브렉시트를 최소 3개월 연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수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브렉시트 관련 법에 따르면 의원들은 정부 결의안에 대해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많은 수의 노동당 의원이 기권을 선택하며 찬성 93표, 반대 315표로 부결됐다. 노동당 지도부가 제출한 수정안도 마찬가지로 찬성 306표, 반대 322표로 부결됐다. 노동당의 수정안은 오는 27일까지 정부가 브렉시트 합의안을 두고 제2 승인투표를 열거나, 아니면 더이상 EU와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향후 조치를 하원의 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메이 총리는 이날 정부 결의안 부결에도 당분간 EU와 브렉시트 합의안 재협상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메이 총리는 이날 표결 전에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스웨덴,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정상과 전화 통화를 하며 브렉시트 합의안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앞서 메이 총리는 오는 26일까지 EU와 합의를 한 뒤 제2 승인투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26일까지 합의를 하지 못할 경우 다음 날 향후 계획을 담은 결의안을 내놓을 예정이며, 의원들이 이를 두고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의 운명은 이달 말께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