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갈림길 선 탄력근로제]대통령까지 중재 나섰지만...파열음만 남긴 경사노위

연이은 마라톤협상에도 기간확대 포괄적 합의 도출 실패

재계 "올 상반기에라도 입법 통과되면 다행" 기대 접어

이재갑 고용장관 "고용쇼크 책임 통감...국민들께 송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이주호(오른쪽) 민주노총 정책실장이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에게 탄력근로제 논의 중단 등을 담은 ‘민주노총 입장문’을 전달하고 있다./권욱기자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이주호(오른쪽) 민주노총 정책실장이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에게 탄력근로제 논의 중단 등을 담은 ‘민주노총 입장문’을 전달하고 있다./권욱기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18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관련한 두 달간의 논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포괄적 합의를 이뤄내는 데 실패하면서 앞으로 파열음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 지난해 연내 입법을 목표로 했다가 올해 2월로 미뤄진 상황에서 국회 논의까지 거치려면 시간표는 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어 “사회적 대화로 시간만 낭비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노총 측이 경사노위의 논의 자체를 전면 무효라고 선언하는 등 탄력근로제와 관련한 장외투쟁 강도를 높일 방침이어서 재계는 “올 상반기에라도 입법이 완료되면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는 정부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며 운을 뗀 후 지금까지 파열음이 계속됐다. 당초 여당은 탄력근로제 개편안을 강행처리할 예정이었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강력 반발하는 등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2일 “경사노위가 이를 의제로 논의한다면 장기간 노동 등 부작용을 없애는 장치와 임금을 보전하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논의가 경사노위로 넘어왔다.


지난해 12월20일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1차 회의를 시작으로 경사노위는 총 8차의 본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달 14일 열린 7차 회의까지 노사가 각자의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결국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17일 전체 위원이 아닌 노사정 대표자가 참여하는 간사회의에서 한국노총 측이 “임금 보전을 해준다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늘리는 것은 합의할 수 있다”고 의견을 내놓으며 합의 가능성이 물망에 올랐지만 사용자 측에서 “임금 보전을 한다면 탄력근로제의 의미가 없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 외에도 한국노총은 ‘과로 기준을 3주 180시간, 4주 240시간으로 정해 근로기준법에 반영’ 등 과로 방지, 건강권 확보 등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요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간의 팽팽한 입장 대립은 이날 노동시간제도개선위 모두발언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다. 한국노총 측의 정문주 위원은 “어제 밤샘 마라톤 집중 협상을 했지만 가시적으로 의견이 모아지거나 함께 갈 수 있는 내용이 만들어지지는 못했다”며 “집중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방지, 임금 보전, 건강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철수 위원장은 “막바지 합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고 짧게 말했다.


장외에서 터져 나온 노사 간 입장차도 분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측은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을 다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한국노총 관계자는 “애초 먼저 제의한 것은 노동계인데 우리도 할 일을 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관련기사



탄력근로제는 일이 몰릴 때 더 많이 일하고 한가할 때 업무량을 줄여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으로 맞추는 제도다. 예를 들어 2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적용한 사업장은 첫주 48시간, 둘째 주는 32시간을 일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현재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까지 정할 수 있다. 재계는 조선 등 일감이 특정 시기에 몰리거나 계절을 타는 제조업 기업을 위해 근로시간을 조절하는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며 최대 1년을 상한으로 요구해왔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는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역행한다고 보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한국노총은 탄력근로제가 확대 시행되면 재계가 연장근로에 적용되는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게 돼 임금이 7%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경사노위 논의 과정이 끝난 가운데 재계는 “이른 시일 안에 입법이 완료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기대의 끈을 아예 놓아버린 눈치다. 당장 경사노위가 마련한 틀도 없는 상황에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날 노동시간제도개선위 회의 장소인 경사노위 대회의실에 민주노총 조합원 30여명이 ‘탄력근로제 논의는 경총 민원처리, 경사노위 개악 논의 중단하라’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들어와 회의 시작이 2시간 넘게 지연됐다. 민주노총은 입장문을 이 위원장에게 전달하겠다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하면서 결국 박태주 상임위원에게 전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이 정부가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것인지 늘리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경사노위는 정부 정책을 일관적으로 관철하는 기구가 아닌데 지금도 보면 시기도 의제도 못 박고 강압적으로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관련해 “2월 임시국회도 열릴 가능성이 적어 ‘2월 내 처리’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며 “민주노총이 다음달 6일 파업 일정을 발표했고 한국노총도 국회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여 빠른 처리는 어렵고, 올해 상반기 안에는 완료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애초 지난해만 해도 연내 처리설이 돌았지만 올해 2월(경사노위 논의 당시)에서 또다시 상반기로 일정이 미뤄진 셈이다.

한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쇼크’가 이어진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날 오전 고용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한 이 장관은 “1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과 비교해 1만9,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월 취업자 수가 크게 증가한 기저효과가 작용했다고도 하지만 고용비중이 높고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주력 제조업의 고용 감소폭이 확대된 것은 우리나라 고용여건이 심각한 상황임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자리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변재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