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英노동당




19세기 초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영국의 산업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계화로 인해 노동자들은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에 시달렸다. 이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권력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이런 배경에서 1838년 이후 나타난 것이 차티스트운동이다. 노동자들은 남성의 보통선거권과 의원출마자의 재산자격제한 폐지 등을 요구했다. 마침내 1867년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노동자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00년에는 노동조합과 페이비언협회 등이 ‘노동대표위원회’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것이 영국 노동당의 뿌리다. 같은 해 선거에서 2석을 얻어 의회에 진출한 노동자들은 1906년 의석을 29석으로 늘리면서 당명을 노동당으로 바꿨다. 좌파 정당으로 돌아선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다. 전쟁 중 발생한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색채가 강해진 것이다.


첫 집권에 성공한 것은 1924년이다. 선거에서 제2당으로 올라선 노동당은 자유당과 손잡고 맥도널드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때부터 노동당은 보수당과 함께 영국의 양대 정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1945년 총선에서는 393석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처음으로 노동당 단독 정권을 수립했다. 노동당의 암흑기는 ‘불만의 겨울’과 함께 찾아왔다. 1979년 경기 침체 속에 파업이 일상화되는 등 영국병이 번지자 노동당은 신보수주의를 내건 마거릿 대처에게 정권을 내주고 만다. 이후 1997년까지 대처와 존 메이저라는 두 명의 보수당 총리가 있는 18년 동안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이 토니 블레어다. 블레어는 1997년 선거에서 이념을 초월한 실용노선인 ‘제3의 길’을 내세워 418석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둔다. 이후 노동당은 블레어의 3연임을 포함해 2010년 5월까지 13년간 집권하는 전성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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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동당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제러미 코빈 당 대표의 노선에 불만을 가진 당원 12만명이 당을 떠난 데 이어 최근에는 의원 8명도 탈당했다. 코빈 대표는 “유럽연합(EU)에 잔류하자”는 내부 의견을 무시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철도 국유화와 대학 무상교육 등 이념에 치우친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당원들의 불만을 폭발시켰다. 영국 노동당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포퓰리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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