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라운드폴리·을지로 부영빌딩 띵굴스토어·회현동 카페 피크닉(Piknic)…. 이 ‘핫’한 장소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빅테이블’이 설계한 맞춤 가구가 있다는 것. 올해로 설립 4년 차에 접어든 바이빅테이블은 주방가구부터 진열대, 카페데스크, 와인 서비스 테이블, 침대까지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감성적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튀지 않지만 평범하지 않고, 자연스럽지만 확실한 존재감이 있다. 최근엔 홈퍼니싱(Home Furishing·집 꾸미기) 열풍에 ‘나만의 가구’를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홈 인테리어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좋은 가구는 ‘사람을 모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 정재운 대표를 지난 21일 장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주방가구로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 처음엔 건축설계사무소의 프로젝트에서 주방공간만 도맡아 디자인했다. 포트폴리오가 하나둘 쌓이면서 업계에서 자연스레 입소문이 났다. 최근 레드닷 어워드 본상을 수상한 어라운드폴리도 지랩의 제안으로 주방디자인을 하게 되었고 을지로에 오픈한 띵굴스토어 가구설계도 건축설계사무소인 ‘푸하하하프렌즈’의 제안이었다. 함께 작업했던 고객들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 지금은 침대·의자 등 다양한 맞춤 가구로 영역이 확대됐는데.
△ 주방 디자인에 만족한 고객들 중 그 콘셉트를 공간 전체로 확장하길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빌트인가구, 테이블, 수납장, 침대까지 직접 디자인해주길 원했고 그 요구에 맞춰 주문제작가구 또는 공간설계 등으로 사업영역이 점차 넓어졌다.
- 디자이너의 주방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까다로운 고객 아닌가.
△ 많은 작업을 함께한 건축사무소 ‘지랩’의 노경록·이상묵·박중현 실장 모두 살고 있는 집의 주방을 의뢰했다. 질문대로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족시키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고객이 디자인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해하거나 통하는 부분도 많다. 미학적인 면에서 가장 민감한 고객이라는 점은 바꿔 생각하면 아름다움을 위해 재밌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최근엔 철제가구 브랜드 ‘레어로우’의 양윤선 대표도 바이빅테이블의 고객으로 거듭났다. 이사갈 집의 주방과 드레스룸 가구를 디자인했다. 업계 사람이 믿고 맡겼다는 것만 봐도 그만큼 신뢰를 얻었다는 것 아니겠나. (웃음)
- 최근엔 직접 문의하는 일반고객도 많아졌다고 들었다.
△ 요즘 들어 놀라운 변화 중 하나다.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직접 문의하는 일반 고객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일반인 중에 디자인 스튜디오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홈퍼니싱 열풍이 불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 브랜드를 찾는 것을 넘어 맞춤 가구를 찾기 시작했다.
- 대기업 브랜드 가구와 ‘바이빅테이블’ 같은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의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일단 주방으로 예를 들어보자. 각 집의 구조에 맞춰 제작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대기업에서 나오는 주방도 넓은 의미로 보면 주문제작이라 할 수 있겠지만, 디자인 스튜디오와 비교해보면 한계가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기업에서 대량으로 사입하여 사용하는 재료들 안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재료선택의 폭이 제한적이고 디자인이 규격화되어있다는 점이다. 백화점에 정장 매장에서도 컬러·원단을 선택할 수 있고 체형에 맞춰 팔, 다리 기장을 수선해준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 ‘맞춤 정장’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옷 한 벌을 사도 본인의 체형과 취향에 맞게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직접 선택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은 곧장 테일러샵을 찾는다. 바이빅테이블 같은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를 찾는 고객들은 맞춤정장처럼 내 감성에 딱 맞는 가구를 원한다. 실제로 설치했을 때 만족도가 더 높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결국 대중화된 디자인으로 사용자의 감성을 평균치로 맞추느냐, 맞춤 디자인으로 사용자에게 최적화하느냐의 차이 아니겠나.
- 취향이 뚜렷한 것과 공간에 취향을 녹여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작업과정이 궁금하다.
△ 맞다. 원하는 건 있는데 대충 이미지 정도다. 첫 미팅에서 “원목 느낌인데, 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모던한 스타일”로 만들어달라는 식이다. 원하는 이미지는 있는데 정확히 표현해내기 힘들거나 아직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고객들이다. 고객이 던진 힌트를 바탕으로 답을 찾아 나간다.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다. 그 이야기를 파고들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영감을 받는다. 퍼즐을 맞춰나가듯 하나씩 꿰다 보면 의뢰한 고객이 보이고, 디자인 방향이 설정된다.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그 단 한사람만을 위한 디자인이 완성된다.
- 뭐든 직접 경험해보는 걸 최우선으로 삼는 것 같다.
△ 그런 편이다. 주방가구를 디자인할때는 쇼룸을 레스토랑처럼 운영했다. 실용성이 매우 중요한 가구이니만큼 소비자가 선반을 열어보고 여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쇼룸에 배치된 주방가구를 활용해 직접 요리까지 해볼 수 있게 한 이유다. 2년여간 운영하며 주방의 동선을 짜고 디자인하는 밑거름이 됐다.
셀프 인테리어 실패 사례를 보고 ‘키친 리프레시’라는 프로젝트도 기획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세입자로 사는 가구가 많은 편이라 보통 주택에 포함된 것으로 여기는 주방이나 빌트인가구등은 세입자의 취향대로 바꾸거나 자비로 교체하기도 부담스럽지 않나. 이런 점에 착안해 눈에 보이는 가구 도어나 마감재만 간단하게 교체해주는 서비스를 일정 기간 운영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지만 이를 시공하고 만드는 사람들은 새로 제작하는 것 못지 않게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최근엔 만드는 가구에 철제를 활용한 샘플작업을 위해 메이커스페이스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사무실에서 ‘이거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면 아래층에 내려가 바로 만들어 볼 수 있다. 3D 시뮬레이션이나 컴퓨터 도면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