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단순히 반일 투쟁을 넘어 독립과 자유를 중시한 운동이었어요. 우리는 먼저 독립을 이룬 국가로서 북한·티베트와 같은 억압받는 곳에 독립의 정신을 전파해야죠.”
피터 알렉산더 언더우드(64·한국명 원한석) 연세대 이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시종일관 대한민국을 ‘우리’라고 말했다. 언더우드가(家)는 4대째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에 뿌리를 둔 서양인’ 가문이다. 언더우드 이사는 지난 1885년 선교사로 한국에 와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연세대 설립자의 증손자다. 그에게 한국은 조국(祖國)이나 다름없다.
언더우드 이사는 “3·1운동 당시 우리는 가난하고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앞으로 100년은 우리의 좋은 문화와 경쟁력을 다른 나라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티베트처럼 아직도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라를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3·1운동이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것은 맞지만 이를 단순히 반일 정신이라는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자유·독립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몸짓으로 폭넓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언더우드 가문은 한국의 근·현대를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다. 언더우드 가문 중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은 사람은 언더우드 이사의 증조할아버지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였다. 할아버지인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는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이 제암리에 살던 민간인 20명을 학살한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에 알린 주역 중 한 명이다. 작은 아버지인 리처드 언더우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언더우드 이사는 “3·1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은 (증조할아버지가 선교한) 기독교 신자였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암리 학살을 세계에 전한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가치를 중시했을 뿐”이라며 “한국인 친구도 많은 할아버지가 그런 잔혹한 일에 격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언더우드 이사는 가문 대대로 쌓인 한국에 대한 큰 애정을 기반으로 미래에 대해서도 높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한국은 큰 소리로 반대하는 것은 잘 배웠지만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데는 약하다”며 “대화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간다면 100년 뒤에도 한국은 가장 모범적인 나라로 꼽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영·김인엽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