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3·1운동을 넘어 '모두를 위한 세계'로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3·1운동100주년 '모두를 위한 세계'

베트남,일본,남아공 등 작가참여해 5월 26일까지

각자 자국의 정치상황 반영하지만 서로 다른 표현법

윌리엄 켄트리지 ‘더욱 달콤하게 춤을’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윌리엄 켄트리지 ‘더욱 달콤하게 춤을’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3·1운동에 앞선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조국 독립 선언이 울려 퍼졌다. 이른바 ‘2·8 독립선언’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렇게 시작된 3·1운동은 전국 각지로 퍼졌고 당시 우리 인구의 10%에 달하는 200만 여명이 “독립 만세”를 외쳤다. 국내 뿐만 아니었다. 중국 상하이와 만주, 프랑스 파리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학생들의 총체적 움직임으로 확산된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을 넘어 인도, 필리핀, 동남아시아, 아랍지역의 민족 운동과도 연결됐다.

서울시립미술관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일 관악구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에 ‘모두를 위한 세계(Zero Gravity World)’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다. 3·1운동의 항일정신을 확장시켜 제국주의에 대항한 세계적 인권운동으로 해석한 것.

옛 벨기에영사관 건물이었던 미술관 정문을 들어서면 가파른 경사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경사로를 오르는 발걸음이 적잖이 묵직한 것이 전시 시작부터 힘겹게 느껴지지만, 이는 관객의 컨디션 탓이 아니라 중력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작용하는 ‘중력’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다. 벽면의 스케치는 가짜 여권과 대사관, 인공 대지 등을 보여주며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골몰하게 만든다. 터키 출신의 작가 아흐멧 우트의 ‘공상적 환상의 물질 세계’이다. “역사적 사건들이 만유인력을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가는 것만큼 어렵게 추진되지만 희망적 진보를 보장할 것”이라는 작가의 바람을 은유한다. 작가는 난민·망명 신청자들의 자율적 지식 교환 플랫폼인 사일런트 유니버시티(The Silent University)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아흐멧 우트 ‘공상적 환상의 물질 세계’ 중 일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아흐멧 우트 ‘공상적 환상의 물질 세계’ 중 일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제주 태생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 제인 진 카이젠의 ‘거듭되는 항거’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8년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의 파편적 기억과 억압된 역사를 조명한다. 작품을 이루는 각 영상은 4·3사건의 트라우마를 지닌 생존자들과 친척들의 기억,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무당의 제의, 제주 해군 기지 구축에 대한 저항 등 과거에 멈춘 게 아니라 현재까지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을 재현한다. 이를 통해 사건의 진실과 숨겨진 정치적 동기를 드러내고자 했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는 덴마크로 입양돼 지금은 독일에 살며 활동한다. 서사적인 실험영화 등으로 작업하며 올해 5월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대표작가 3인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를 비롯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삼성미술관 리움 등지의 전시에 참여했고 지난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검은 그림자로만 모습을 드러낸 등장인물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춤과 노래로 무언가를 애도한다. 무려 7채널이나 되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영상작품 속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사람들은 장례 의식과 난민의 행진을 연상시키며 ‘더욱 달콤하게 춤을’이라는 제목을 역설적으로 곱씹게 한다. 작가는 르완다 피난민, 발칸반도 탈출 행렬 등에서 영감을 받았고 작품에는 키케로 같은 로마시대 정치가나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당시의 민초들의 얼굴이 등장해 정치적 암시를 전한다. 195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던 변호사 부모 슬하에서 자란 켄트리지는 연극과 정치학 등을 두루 공부했기에 작품 속에 시적이고 연극적인 요소와 함께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에 관한 정치의식을 세련되기 녹여낸다.

응유옌 트린티 ‘판두랑가에서 온 편지’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응유옌 트린티 ‘판두랑가에서 온 편지’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베트남 작가 응우옌 트린티는 ‘판두랑가에서 온 편지’라는 작품을 통해 역사에서 사라진 참파(Champa) 왕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참파는 2세기 말엽부터 17세기 말까지 대략 1,500여년 간 베트남 중남부에 위치한 참족의 나라지만 베트남의 침공으로 없어졌고, 지금은 베트남 역사의 숙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다.


이번 전시 표제에도 영향을 준 대만 작가 야오 루이중의 ‘모두를 위한 세계’는 유럽·미국·캐나다·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지를 방문하며 만났던 차이나타운을 소재로 한다. 작가와 그의 가족은 차이나타운을 경제적·정치적 도피처로 삼아 정착했지만 대만사람이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향한 오해와 경계심도 상당했다. 결국 차이나타운은 작가에게 고립과 독립된 삶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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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히카루 ‘2·8 독립선언서’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후지이 히카루 ‘2·8 독립선언서’ 중 한 장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각각의 참여작가들은 자신의 국적 및 성장배경이 작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일본작가 히카루 후지이는 이번 전시를 위해 도쿄의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일본의 혹독한 감시 속에서 한국인이 300명이나 모여 독립을 선언한 행위를 재조명했다. 작가는 일본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유학생들을 섭외해 2·8 독립선언문 낭독을 재연하게 했다. 베트남 노동자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의 대명사이기 때문. 작품 ‘2·8 독립선언서’는 이 베트남인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도 만연한 불의와 불평등을 다시 불러낸다. 일본인 작가에 의한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더욱 특별한 울림을 전한다. 5월26일까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야오 루이 중 ‘모두를 위한 세계’ 중 일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야오 루이 중 ‘모두를 위한 세계’ 중 일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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