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한유총은 그동안 전개했던 개학 연기를 조건 없이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한유총은 “개학 연기 사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내일부터 각 유치원에서는 정상적으로 복귀해 달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이 이사장은 “모든 사태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수일 내로 거취표명을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개학 연기 투쟁 하루 만에 한유총이 꼬리를 내린 것은 교육당국의 엄정한 대응과 저조한 참여율 등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한유총 입장 발표전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 개학 연기가 실제 이뤄져 설립 허가 취소 방침을 결정했다”며 “관련 세부사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유총은 서울시교육청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민법 28조에 따르면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저질렀을 때 주무관청이 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한유총의 기대와 달리 개학 연기 유치원 숫자가 소수에 불과한 점도 백기투항의 배경이 됐다. 이날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을 통해 조사한 결과 개학 연기 유치원은 전체 사립유치원 3,875개 중 6.16%인 239곳에 그쳤다. 이는 3일 오후11시 기준 9.4%(365곳)로 조사됐던 것과 비교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미개원 상태로 개학 연기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유치원 총 23곳을 포함하더라도 개학 연기 유치원은 전날 예상보다 크게 감소했다. 정부의 엄정 대응 방침과 싸늘한 여론에 상당수 유치원이 방향을 틀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의 경우 전체 사립유치원 606곳 중 585곳이 정상 운영됐고 14곳이 개학 연기를 선택했다. 앞서 한유총은 자체 조사를 통해 개학 연기에 참여하는 유치원이 1,533곳에 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들도 대부분 자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려했던 보육 대란 사태도 일단 발생하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개학 연기한 239곳 가운데 90%가 넘는 221곳이 자체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장은 “전국적으로 긴급 돌봄 신청인원이 1,000명이 되지 않았다”며 “개학 연기 유치원 중에서도 자체 돌봄을 제공하는 유치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현장 방문조사 결과 개학을 연기한 것으로 확인된 유치원에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자체돌봄을 제공한 유치원에도 학사과정을 변칙 운영한 책임을 물어 역시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교육부는 이날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을 5일 다시 현장조사해 문을 여는 유치원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러나 일단 이날 개학 연기가 이뤄진 만큼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사업자 단체의 불법단체 행동’이라고 보고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교육청도 개학 연기 철회와 관계없이 한유총의 사단법인 허가를 취소하기로 하고 5일 한유총에 이를 공식 통보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학부모들도 한유총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는 등 여론이 돌아선 점도 투쟁 포기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자체 돌봄 서비스 제공과 별개로 유치원의 셔틀버스가 운영되지 않아 학부모들이 직접 자녀들을 등원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학부모 손을 잡고 등원했다. 세 아이를 둔 한 직장인 엄마는 “개학 연기로 유치원 버스 운행이 안 된다고 해서 오전에 반차를 내고 왔다”며 “회사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갑자기 일정이 꼬여 난감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학부모 박모씨는 “얼마든지 이 같은 일이 재발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정부가 재발방지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맞벌이 학부모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유치원 휴업 등이 다시는 협상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사립유치원의 운영 투명성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유총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오히려 유치원 3법 처리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가 결국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의 핵심인 ‘유치원 3법’을 두고 여야 간 대립이 이어지면서 처리가 지연된 과정에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유총이 유아와 학부모를 볼모로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잃기만 하고 오히려 ‘유치원 3법’ 처리에 동력을 불어넣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경운·서종갑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