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양극화 현상, 美 국가신인도에 직격탄

이란 핵·기후협약 등 국제합의

트럼프 '반국가적' 간주 안지켜

北도 美와의 거래 의심 품을것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나쁜 합의에 도달하는 것보다 차라리 협상이 결렬되는 편이 낫다고 결정한 듯 보인다.

비핵화 협상의 중요성을 감안해 중차대한 이슈에 걸맞게 신중한 접근법을 택한 트럼프와 그의 외교팀이 내린 합리적 결론이다.

북한과의 협상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일단 초반에 양보하면 추후 합의를 끌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봐서 북한은 합의사항을 이행한다든지 성실히 준수한다든지, 후속조치를 취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미국 역시 국제적 합의를 준수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떤 협상에서든 먼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것은 늘 유용하다. 북한 정치인이라면 분명 미국 대통령이 직접 협상에 참여하고 서명한 가장 최근의 국제협정부터 찾아내 연구했을 것이다. 이란 핵 협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란이 보유한 핵물질의 98%와 수천 기의 원심분리기 및 아라크 원자로를 완전히 제거하고 감시카메라 설치와 모든 핵시설에 대한 사찰에 합의한 대가로 미국은 이란 제재를 풀고 서방기업들과의 거래를 허용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서조차 이란은 국제 경제 시스템에 자유로이 접근하지 못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협정 내용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미국 간의 상업적 거래를 허용하지 않았다며 수차례에 걸쳐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이란에 대한 보이콧을 종용하는 한편 달러화의 힘을 이용해 이란과의 상업적 거래를 동결시키려 드는 등 이란 핵 합의를 적극적으로 폐기하려 했고 협정위반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때 공고했던 이란 핵 협정에 대한 지지가 무너진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03년 보유 중인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신고와 해체’에 동의한 리비아는 나름대로 합의 내용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의 반대급부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가 “존경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확고한 위치를 회복하도록 지원하고 리비아와 미국의 대대적인 관계개선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부시는 리비아를 ‘번영하는 국가로 만드는 데 미국이 힘을 보태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물론 그의 약속은 거의 빈말로 끝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년이 지난 뒤 오바마 행정부는 가다피 정권의 축출을 지원했다.


나는 미국의 리비아 개입이 정당했는지 여부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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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북한 협상가에게 미국이 김정은 정권의 안정을 보장한다고 약속한다면 역사적인 맥락에서 미국의 불성실한 과거 행적에 당연히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대미협상의 역사를 진지하게 되짚어본다면, 그들 역시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했고, 꼼수를 동원했으며,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다.

워싱턴은 그래도 그 정도까지 불성실하게 행동하지 않았지만 평양에 실현 불가능한 악속을 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북한은 1994년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이미 사용한 핵연료봉을 국제핵사찰단의 감시 아래에 두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영변 핵시설이 궁극적으로 해체되면 그에 대한 대가로 워싱턴은 북한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에 경수로 2기의 원자로와 중유를 제공한다는 데도 의견일치를 봤다.

이후 북한은 그들이 제시한 조치들을 대부분 이행했다. 하지만 미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국장인 리언 시걸이 38노스 기고문에서 지적했듯이 워싱턴은 북한에 경수로 원자로를 제공하지 않았고 중유도 제시간에 맞춰 공급하지 않았다. 그저 관계 정상화를 향한 미미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이에 맞서 평양은 미국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북한이 준수해야 할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북한은 합의안을 위반하기 시작했다.

이어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합의 자체를 통째로 무산시킨 데 이어 북한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강경한 노선을 택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극도로 양극화된 지난 사반세기의 정치적 환경에서 비롯된 부분적 결과이다. 냉전기에도 전임 대통령이 약속한 대부분의 국제적 합의와 약속은 후임자들이 그대로 유지했다.

예를 들어 공화당 의원 중 상당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대외원조에 관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에 반대했지만 공화당은 그의 정책방향을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했고 권력을 장악한 뒤에도 이를 폐기하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였던 당시 빌 클린턴은 조지 H W 부시의 해외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했으나 막상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전임자의 정책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을 현재 환경과 비교해보자. 트럼프는 이란 핵 합의와 파리 기후협약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발을 뺐으며 나토의 지속적 가치에 공공연히 의문을 표시했다.

트럼프는 바로 앞 전임자의 모든 결정을 최소한 잘못되거나 때로는 반국가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만약 당신이 북한 협상가라면 트럼프 행정부와의 거래가 후임 행정부에 의해 제대로 지켜지고 정당하게 시행될 것인지 당연히 궁금해할 것이다.

씁쓸하기 그지없는 국내 양극화로 미국의 국가신인도와 대외정책의 일관성이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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