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사노위 '탄력근로 합의' 무산]경사노위 의결 구조 바꾸겠다지만…과거 노사정위 후퇴 우려

노동자 위원 17명중 3명 안나와

대립 이슈때마다 '불참카드' 우려

문성현 "운영방식에 대안 강구"

노사단체 중심으로 개편에 무게

"민노총 부재가 근본 원인" 지적도

靑 "유감"…11일 본회의 재소집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에서 비정규직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소속 활동가들이 경사노위 해체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에서 비정규직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소속 활동가들이 경사노위 해체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0815A04 경사노위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첫 작품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했다. 일부 노동자위원의 일방적 불참으로 탄력근로제 확대 등 주요 안건을 의결하지 못하면서 의사결정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점이 불거졌다. 경사노위는 의사결정 과정의 대안을 강구한다는 입장이나 주요 노사단체 중심으로 개편하면 과거 노사정위원회 시절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의결 무산은 노동계의 두 축 중 하나인 민주노총의 불참에 따른 근본적인 한계가 노출된 것으로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7일 본위원회 회의 직후 경사노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위원 위촉 등 운영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대안을 검토하고 마련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사노위는 원래 이날 탄력근로제 개편안,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방안 등을 안건으로 본위원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위원 중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이 불참하며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경사노위는 오는 11일 다시 본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하고 불참한 위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당초 이날 안건들이 본회의에서 의결될 경우 사회적 대화를 통한 경사노위의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청와대는 이날 “대통령 자문기구 위원으로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원하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참석해 의견을 표명했음에도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불참한 위원들의 조속한 참석 및 합의안에 대한 본위원회 의결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난 시기 경사노위 의제별위원회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 등이 본회의에서 무산되며 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개편 필요성이 제기됐다. 문 위원장은 “일부의 불참으로 어렵게 마련된 소중한 결과물이 최종 의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사노위는 현재 위원장과 상임위원, 노사정을 대표하는 위원과 공익위원 4명 등 총 17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행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은 이 중 각 계층별 대표자의 과반이 출석하지 않으면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없다. 이런 문제는 다른 이슈에서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 사용자 측에서 반대하는 안건이 올라오면 사용자 위원들도 불참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 위원장의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의사결정 구조 운영 방식에 대한 검토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필요할 경우 법 개정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태가 재발하면 본위원회는 무력화할 수밖에 없다며 “경사노위에서 앞으로 있을 합의안도 똑같은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경사노위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꾼다면 대표들의 보이콧으로 본위원회에서 의결이 안 되는 상황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박 상임위원은 “사회적 대화의 핵심은 이른바 전국 차원의 노사단체로 이들이 중심이고 청년·여성·비정규직은 중요하지만 보조 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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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가 의사결정 과정의 개선 의지를 밝혔지만 주요 노사단체를 중심으로 의사결정 구조를 개편하면 청년·여성·비정규직 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소상공인, 중소·중견기업도 들러리가 될 수 있다. 과거 노사정위원회로 돌아가는 셈이다.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경사노위의 기본정신이 무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소수의견도 타당하다면 다수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지만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사회적 대화의 정신과도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사노위가 이처럼 암초에 걸린 게 너무 조급한 의사결정 과정이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적 대화 자체가 신뢰라는 자산을 쌓는 과정인데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정치적 책임을 혼동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사결정 개편은 법 개정 사안이라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정치권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해 답을 정해놓고 책임감을 얹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번 사태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불참한 3명의 노동자위원들의 경우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탄력근로제 개편안에 강력 반발하는 상황을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이 있는 탓이다. 경사노위 본위원회에 불참한 노동자위원들도 입장문에서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심각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장외투쟁만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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