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송금 및 비자발급 정지라는 초강수 카드를 언급했다. 일본 정부가 가뜩이나 경색된 한일관계를 한층 악화시키는 발언으로 갈등을 키우는 분위기다.
일본 교도통신은 12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징용배상 판결과 관련한 보복 조치의 예로 송금과 비자발급 정지를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아소 부총리는 이날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한국의 징용피해 소송에서 배상 명령을 받은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 문제를 언급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일본이 한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지 이틀 만에 나온 발언이다. 통신은 앞서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경제에 동등한 손실을 주는 조치로 한국산 일부 물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축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보복 관세 리스트에 올릴 선택지로 이미 100개를 추려놓은 상태로 관세 인상 외에 일부 일본산 제품의 공급을 중단하거나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방안도 부상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등을 고려해 구체적인 대응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자민당 내에서는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협의에 응하지 않자 주한 일본 대사의 소환과 방위 관련 물품 수출규제, 한국산 수입품 관세 인상 등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의견이 올 초부터 나왔다.
다만 일본 정부는 아직 한국에 보복 조치를 공식화하지 않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1일 원로 정치인을 만난 자리에서 “한일은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총리관저에서 아베 총리를 만난 가메이 시즈카 전 금융 담당상도 기자들에게 최근 급속도로 얼어붙은 한일관계에 관해 “본격적인 싸움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일본 재계에서도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국 경제계는 오는 5월 서울에서 열 예정이던 ‘한일경제인회의’를 양국 관계 악화의 영향으로 9월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이미 양국의 외교 경색이 경제 분야로 파급되고 있다. 다만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국민 감정에서는 문화·이해의 차이가 선명하지만 이러한 때일수록 민간 차원의 교류에서 도망쳐서는 안 된다”며 “양국 경제계는 같은 생각(한일 우호)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관계는 곤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곤란해진다”면서도 “회의 개최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회원사들이) 찬성한다면 가능한 한 (회의 개최를) 해 보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