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이 5년 만에 철거된다는 소식입니다. 14일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일요일인 오는 17일 오전 10시 광화문 분향소 이안식을 끝으로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 14동을 자진 철거할 예정입니다. 협의회는 “이제 시민가족 여러분의 역사가 담긴 광장을 ‘기억공간’으로 시민들께 돌려드리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세월호 참사 1,795일 만의 일입니다.
이곳은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맨바닥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던 장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의원 시절 유가족과 함께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늘 하나 없었던 한여름의 광장에 비닐천막이 생긴 뒤 서명대, 분향소, 전시관 등이 생겨났습니다. 시민들 손길이 하나씩 보태어지며 지금 모습으로 자리하게 됐죠. 지난 주말에도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천막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를 이어갔습니다.
세 아들과 함께 전북 군산에서 올라온 한용희 씨(48)는 “그동안 이곳에 애들 데리고 와보고 싶었는데 천막 철거한다고 하니까 그전에 왔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천막을 찾은 경주에 사는 부부 최영춘(72), 김윤옥(68) 씨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도약했다고 하지만 음지에서는 비명으로 간 젊은 청춘들이 있는데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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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천막 사라진 자리에 생기는 ‘기억공간’의 용도는?
세월호 천막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길이 23m, 폭 3.7m, 높이 2.66~4m의 목조 구조물이 오는 4월 세월호 5주기에 맞춰 ‘기억공간’이 마련됩니다. 서울시는 이 시설을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재난을 모두 포함해 안전을 테마로 한 전시·홍보관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다만 ‘기억공간’은 올해 말까지만 운영되는 한시적 공간입니다. 서울시가 내년부터 2021년까지 광화문 광장 전면 재조성 공사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들은 상설 공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이런 공간이 조성된 게 아니었잖아요. 춥고 더운 날씨에 비닐 쌓아놓고 그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 가지고 손 호호 불어가면서 함께했던 시민들, 국민들이 모였던 광장이거든요.” (고 임경빈 학생 엄마 전인숙 씨)
“아픔과 희망의 공간, 기억의 공간이죠. 계속 잊지 않고 그래야 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안전한 나라가 되니까요. 계속 기억의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고 김동영 학생 아빠 김재만 씨)
협의회는 “광화문 광장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실과 미래를 공감하는 기억공간,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연대와 활동의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 “이제 그만 잊어야 할 때가 아닌가”에 대해서
한편에서는 ‘그만 잊자’고 합니다. 유가족들도 그런 의견을 이해합니다. 고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는 지난 12일 416TV 영상에서 “광화문 광장은 누가 뭐래도 시민 분들의 광장”이라며 “‘안전한 나라’라는 당연한 요구가 투쟁으로 변해가는 이 시점에서 부족하지만 시민의 광장이기에 국민들과 함께 가기 위한 방안”으로 천막 철거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전인숙 씨도 “(세월호 천막을) 반대하거나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기왕이면 같은 마음으로 앞으로도 잊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여러 입장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지난주 토요일 피켓 시위에 나선 유가족을 향해 한 시민은 “지겹다, 이제 그만 잊자”며 한소리 던지고 지나갑니다. 세월호 같은 ‘해상 사고’에 추모 시설을 두는 것을 반대한다며 “어느 나라가 이 같은 사고를 ‘특별 대우’ 해주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광화문 광장이라는 의미는 서울시 만의 공간이 아닌 역사적 의미를 담아야 하는 공간”이라며 “아픈 공간이기보다 좀 더 밝은 공간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심용환 역사학자 겸 작가는 “광화문이 단지 조선 왕조 육조거리일 뿐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4월혁명, 6월항쟁에서부터 2002년 월드컵, 최근 촛불집회까지 광화문이 가지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상징성이 있다”며 “그런 걸 싹 없앤 다음에 텅 빈 공간으로 두는 건 지구 상 그 어디에도 없다”며 “세월호가 광화문에 못 있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 “왜 세월호만 ‘특별대우’하는 거냐”고요?
해외에서는 재난과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같은 해상 참사를 추모하는 곳이 정말 어디에도 없는 걸까요.
미국 뉴욕 시내에는 영화로도 알려진 타이타닉호 침몰사고(사망 1,514명)를 기리는 추모 공원이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묘역과 등대 모양의 추모조형물이 세워져 있죠. 영화를 기억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이 앞에서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기념 촬영을 하곤 합니다. 4,375명이 사망한 필리핀 도나파즈호 침몰사고 역시 추모공원과 조형물이 조성돼 있죠. 폴란드 구스틀로프호 침몰사고(사망 9,343명), 세네갈 르 줄라호 침몰사고(사망 1,863명), 일본 토야마루호 침몰사고(1,155명 사망)도 위령탑이 조성됐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국무조정실의 연구용역 보고서 ‘국내외 추모시설 사례조사 분석 연구(2015)에 따르면 “국내외 해양선박 사고의 추모시설은 비교적 소규모(약 2,000㎡)로 조성돼 있으며 해외의 경우 마을 입구, 광장, 공원 등에 있어 일상적인 접근이 용이해 추모하기에 유리하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 때문에 대형 사고였음에도 추모시설을 조성하지 못했거나 외곽지역으로 밀려나 일반 접근이 어려운 사례가 많았습니다. 창경호 침몰사고(사망 300명), 연호 침몰사고(사망 120명), 한일호 침몰사고(사망 100명)는 추모시설이 마련되지 못했고, 남영호 침몰사고(사망 326명)와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사망 292명)는 각각 제주 서귀포시와 부안군 위도면에 위령탑과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 ’기억하느냐, 잊느냐‘가 아닌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독일 베를린 파리저 광장, 독일의 수도 중심부에는 2,711개의 관 조형물이 있습니다. 축구장 3개 크기 규모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원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에도 추모 시설이 있습니다. 9.11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설인 ’그라운드 제로‘입니다. 110층 세계무역센터 빌딩 두 동이 무너져내린 그곳에 테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모두 도심 한 가운데, 눈에 띄는 곳에 공간을 마련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광화문 광장이나 경기도 안산, 진도 팽목항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곳에 추모비나 기념관, 공원 등을 조성해 참사를 오래토록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특히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을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죠.
이에 대해 ’기억전쟁(휴머니스트)‘이라는 책을 최근 낸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기억이라는 건 훨씬 복잡한 과정이지, 어디 하나에 조형물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21세기 내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까 의문”이라고 말합니다. “세월호에 대해 잘 쓰여진 보고서 같은 게 사회적으로 회람이 되거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거나 해서 학생들이 읽는 게 광화문에 전시관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진짜 잘 기억하는 게 어떤 건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광화문 세월호 천막 철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난 금요일부터 세월호 천막 철거가 공식화한 이날까지 유가족, 시민, 전문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광화문 광장은 “미래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서로가 생각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지만요.
임지현 교수는 “한국사회의 진짜 복수는 그걸 완전히 잊어버려도 좋은 사회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망각해도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최근 몇 년간 전세계에서 테러와 총기 난사 사고가 반복되면서 추모 문화가 점차 다양해지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로 추모 공간이나 비석 따위가 없더라도 시민들이 때가 되면 그 현장을 자발적으로 찾아 촛불을 켜고 국화를 바치거나, 애도의 글귀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식이죠. 모두 아픈 역사를 지우기보다는 애써 기억하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