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비핵화를 할 의지가 없습니다. 숨이 멎을 정도의 강한 제재가 없으면 북한의 비핵화는 어렵습니다.”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복원시키고 북미 협상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재개를 위협하는 등 최근 나타나는 일련의 흐름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은 핵보유국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안보 동기를 갖고 핵을 만든 만큼 쉽게 내려놓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설령 미국이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 정치적인 비핵화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군사적으로는 북한이 여전히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에는 1만여개에 달하는 지하동굴이 있어 핵물질이나 핵폭탄을 완전히 제거하는 게 쉽지 않은데다 핵 제조기술을 이미 확보한 만큼 재무장을 선언하면 1년 이내에 다시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 전 본부장은 이럴 경우 한국과 일본은 유럽처럼 미국의 핵을 가져다 놓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핵공유체제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정말 비핵화를 할 의사가 있다고 보는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스스로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북한이 그런 것을 이야기했다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전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안했다. 오히려 지난해 4월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핵보유국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대응과정을 보면 북한의 속내가 잘 드러난다. 협상이 깨지고 2월28일, 한국시간으로 자정이 넘어 기자회견을 할 때 리용호는 굉장히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우리가 원래 원하는 것은 체제안보로, 그렇게 하려면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해야 하는데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제재해제만 들고 나왔다고 얘기했다. 영변과 제재해제를 하노이에서 맞바꾸고, 다음에 진행이 되면 예컨대 ‘영변 +α’, 강선이든 분강이든 일부 농축우라늄을 신고·폐기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하고 평화협정·미북수교를 하자는 게 그들의 플랜이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영변의 역할은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다. 실제로 북한의 우라늄 원심분리기는 영변에 4,000개, 강선에 1만4,000개, 분강에 1만개 정도가 있다. 결국 역할이 줄어든 영변 폐기를 통해 제재를 해제하고, 다음 단계에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핵보유국의 수순을 밟겠다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데도 남북협력을 가속화하겠다고 한다.
△평창올림픽 때 미국·북한을 초청하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고 중재자 운운하면서, 지난 1년간 대북협상은 심하게 표현하면 ‘사기 쇼’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동안의 남북 협상에서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 진전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6·15, 10·4선언을 했지만 남북관계가 왜 진전되지 않았나. 북한의 핵 도발 때문이었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 남북관계 개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북한의 핵 개발을 도와줬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었다.
-북미회담의 결렬과 관련해 톱다운 방식이 북핵 문제 해결에 한계를 보였다는 의견이 있는데.
△톱다운 방식과 보텀업 방식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태껏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보텀업을 한 것은 북한이 확실한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보텀업 실무협상을 통해 2005년 9·19공동성명을 만들었고 전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고 명확하게 선언했는데도 지키지 않았다. 하노이 북미회담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회담 전에 한반도의 비핵화인지 북한의 비핵화인지 등 비핵화의 정의와 범위도 정해지지 않았고, 그러니 목표·시한도 정해질 리가 없었다. 톱다운 방식도 사전에 전권을 받은 실무 조율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고 개념·목표·시한 등 중요한 것을 양국 지도자들이 합의했을 때 가능하다. 1년 동안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여섯 번이나 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쇼의 조건을 갖춘 회담만 하느라 귀중한 시간만 허송했다.
-문재인 정부는 ‘핵 리스트 제출·폐기·검증’과 ‘제재해제’를 연계하는 미국의 일괄타결 방식보다 신뢰 회복과 단계적 조치를 취해나가자는 북한 측의 입장에 서서 중재를 취하는데.
△북핵 위기는 1991·1992년에 싹트다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시작됐다. 올해로 26년째다. 그동안 북한의 과거·현재·미래 핵을 모두 없애기 위해 단계적 방식을 해보니 안 됐다. 이는 제네바합의에서도 그랬고 6자회담체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괄타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해를 기준으로 25년 동안 얻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는 국내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가면서 물타기를 했다. 사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전에 우리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아니라 ‘동결+α’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줄까 봐 노심초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괄타결로 돌아와 참 다행이다. 협상타결은 한꺼번에 해놓고 이행은 시차를 둘 수 있다. 그러나 시차도 북한이 원하는 것처럼 모든 단계를 살라미처럼 잘라서 해서는 안 된다. 큰 덩치로 하고, 굳이 이행 단계를 나누려면 단계를 줄여야 한다. 동결의 경우 모든 지역에 있는 플루토늄·우라늄 농축시설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 핵물질과 미사일 생산공장을 한꺼번에 중단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뒤 이 모든 것에 대해 신고서를 내고 3단계는 사찰 검증을 한꺼번에 하고, 그다음에 불능화와 폐기를 하는 4단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찰 검증에서는 북한이 약속을 어길 경우 65일 이내에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 중재자를 표명하면서도 북중러 편에 서 있는 듯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 앞에 밝혀질 것이다. 어쨌든 의도와 상관없이 나타난 행위의 결과는 북한의 핵무장을 도와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러시아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북중러의 협력이 깨지고, 특히 북한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더 위기로 본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중국·러시아는 물론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북한의 의도와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왔다. 이는 한미동맹을 튼튼히 하고 그것을 기초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 북한의 핵 보유를 억제하는 전통적인 대한민국의 정책에 어긋나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 실패는 한국은 물론 일본·대만 등의 연쇄 핵무장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어쨌든 해결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데.
△제대로 된 북한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합심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군사적 해결도 불사한다는 국제사회의 의지가 결집되면 성공할 길은 있다. 그러나 최근 1년간, 확대하면 지난 26년 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접근하면 북한의 비핵화는 실패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성공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쉽지가 않다. 1만개 이상의 북한 지하시설이 있는데 숨겨진 핵폭탄을 다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북한은 이미 핵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무장 선언만 하면 1년 이내에 다시 만들 수 있다. 미래 능력을 제거하려면 수만 명의 관련 기술자를 해외로 분산 이주시켜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비핵국가가 되더라도 군사적으로는 잠재적 핵무장 국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북한이 군사적으로 핵을 갖고 있다고 의심되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이는 유럽과 같은 핵공유체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일 북한의 비핵화가 실패할 경우 미국은 대안으로 핵공유체제를 내놓고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을 달래려 할 것이다.
-미국 대선이 1년 남짓 남았는데, 그전에 해결 가능성은.
△북한은 핵이 생명이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핵을 개발했던 나라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활적인 안보 동기를 갖고 있다. 이를 좋은 말 한다고, 돈 준다고, 팔다리 비튼다고 내놓지 않는다. 핵을 내려놓게 하려면 숨이 멎을 것 같은 강력한 제재가 이뤄진 다음에야 진짜 협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 현 정부에 협상만능론자가 많은데 협상을 잘한다고 목을 내놓겠는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수폭 실험까지 했음에도 협상장에 나온 것은 대북제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한 추가 제재가 나오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얘기한 것처럼 제재는 강화하지 않더라도 이행을 강화할 수 있다. 지금은 제재 이행에 구멍이 많다. 세컨더리보이콧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누수를 막을 수 있다. 이게 안 되면 하반기에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무력시위 같은 게 김정은에게 심리적으로 먹히면 연내 제대로 된 비핵화를 위한 진짜 협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이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을 단일대오로 만들고 중국과의 마찰로 인한 비용과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런 것들을 김정은에게 신뢰성 있게 각인시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세 가지 허들을 넘는다면 올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북한 비핵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내년 재선의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트럼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한미 간 엇박자로 한미동맹에 상처를 낼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동맹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19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미군철수가 이어질 때 박정희 대통령이 핵 개발을 추진하다 내려놓으면서 한미연합사령부도 만들고 밀월관계로 전환했던 경험을 잘 살릴 필요가 있다. 친북 성향의 좌파는 “미국이 우리가 예뻐서 와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와 있다”고 주장한다. 결정적으로 중국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그런 주장은 한미동맹이 한국보다 미국에 더 수혜가 있다는 논거가 됐다. 요즘 보수우익 인사도 대체로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아무리 사활적 이익이 있어도 관련 국가가 소홀히 하면 떠난다. 대표적인 게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예나 지금이나 린치핀(linchpin) 중의 핵심 린치핀이다. 한미가 가치동맹으로서 같이 할 수 있는 국제적 이슈에 많이 협력하고 가치를 증대시켜야 한다.
-지난해 9·19남북군사합의와 최근 한미 3대 연합훈련의 사실상 폐기로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문재인의 남북관계 우선주의의 잘못된 만남으로 최근 1~2년 동안 굉장히 위기를 맞고 있다. 남북군사합의 이전 상태로 복원시켜야 한다. 9·19군사합의로 한국군이 지금까지 만들어놓았던 첨단전력, 유일하게 북한에 비해 질적 우위에 있는 재래식 전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놓았다. 미래 전력도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하도록 만들었다. 약소지향적인 국방개혁2.0을 만들어 미래의 국방력을 현저하게 허물고 있다. 한국의 방위라는 게 한미동맹의 큰 축이 있고 그 큰 틀 아래 자주국방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동맹도 약화시키고 자체 국방력도 약화시켜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동맹도 소중히 가꿔야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진리를 감안하면 자주국방력을 키워야 한다. 5000년 역사에서 얼마나 많이 시달렸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에 대해 린치핀이라고 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코너스톤(corner stone)이라고 했다.
△인도태평양이니셔티브라는 것은 중국의 전체주의적 위협으로부터 자유세계를 지키자는 것이다. 왼쪽 수레바퀴가 인도라면 오른쪽 수레바퀴는 한국이고, 제1코너스톤이 일본, 제2코너스톤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으로 볼 수 있다. 인도와 한국은 수레바퀴를 연결하는 린치핀이라는 얘기다. 인도는 아세안이 역할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이 린치핀과 코너스톤 역할을 함께하며 대신할 수 있다. 한국이 빠지더라도 자위대를 정상국가 군대화하고 한국에서 철수한 전투력으로 주일미군을 보강해 미일동맹을 강화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러면 일본은 정말로 군사대국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린치핀이 빠지면 수레가 무너지니까 우리가 미국에 대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오다. 미국은 군대를 보낼 필요가 있으면 처음에는 경제·금융으로 손을 본다. 일본의 플라자합의가 그 예다. 자유 통상질서에 들어와 있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나는 100% 중국이 손을 든다고 본다.
-북한과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추진해왔고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가능성을 내비쳤는데.
△종전선언은 원래 평화협정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요건이다. 평화협정은 이 종전선언 외에 국경선 획정 문제, 포로교환, 재산권 등 세 가지로 구성된다. 평화협정을 하려고 하면 국회에서 3분의2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어려우니 그중에 종전선언만 떼어내 정치적 선언 형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 시도했다. 이를 근거로 평화협정에 담고 있는 내용을 슬금슬금 허물려고 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종전선언은 물론 평화협정을 검토해왔지만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고 북한의 인권 문제가 걸려 결국 안 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 추진했던 것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도 비핵화 없이 종전선언을 떼어내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이 쇼거리가 된다고 봤다. 북한도 당초 소극적이었다. 트럼프가 싱가포르 회담 때 하자고 하니 김정은이 놀랐다. 싱가포르 회담 후 북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왜 안 받았느냐고 했고, 그후 계속 하자고 난리를 치게 된 것이다. 종전선언은 한국전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이고, 그러면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게 합리적인 순서다. 한국전 전에는 유엔사령부도,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없었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이를 근거로 실질적인 평화협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특히 한미동맹과 우리 국방태세를 완전히 흔드는 후속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특히 문 정부는 남북한끼리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하면서 비핵화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한국군의 자주방위태세를 얼마나 많이 허물었나. 북한의 핵은 그대로 있는데 한국군만 무장해제를 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종전선언을 막아야 한다./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1958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 동성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임관했다. 육군 제53보병사단 해운대연대 연대장, 제3사단 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을 거쳤다. 2012년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고 이듬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그 후 차장을 역임했다. 예편 뒤 지금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