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기 위한 실탄도 필요하다. 반면 정부가 요금제를 꽉 쥐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사들의 경영 융통성은 제약을 받고 있는데다 5G 서비스 초기 수익모델도 불완전하다. 통신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거론되는 스마트팩토리 등 기업 서비스나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게임 등 5G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들어갈 돈은 많지만 수익은 줄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은 20%, KT는 10% 넘게 영업이익이 감소했고 증권사들이 최근 추산한 이통 3사의 올 1·4분기 영업이익 합계는 9,060억원으로 지난해 말 추정보다 5% 넘게 줄었다. 이는 무엇보다 5G 요금제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주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5일 SK텔레콤이 제출한 7만원대 5G 요금제가 반려되면서 이보다 낮은 요금제가 책정될 경우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이 떨어져 통신사 수익성을 해칠 수 있다는 얘기다.
5G 서비스가 이제 막 출발점에 선 가운데 통신사들의 초기비용 부담 가중과 요금 통제는 상용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싸울 수 있게 업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돈 쓸 일은 많은데 들어올 데는 당장 보이지 않네요.” 국내 이동통신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5세대(5G) 상용화를 앞둔 기대와 함께 걱정을 드러냈다. 5G 상용화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발전은 물론 제조·운송·보건·의료·재난·안전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융합과 혁신을 촉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망 구축 최일선에서 당장 수조원의 돈을 쏟아야 하는 통신업계로서는 눈앞의 수익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통신업을 정부가 규제로 휘어잡고 있다 보니 시장 논리대로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동통신은 SK텔레콤, 유선전화는 KT에 적용된 요금인가제가 대표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적정 이윤을 챙길 때 추가 투자가 탄력을 받는 만큼 5G의 완벽한 상용화와도 연관이 깊다”고 강조했다.
◇통신3사 年 영업익 전망치 반년 새 5~10%↓=19일 금융투자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증권사들의 통신사 영업이익 추정치를 분석한 결과에는 이 같은 실적 우려가 그대로 담겼다. 통신 3사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최근 3개월 평균)는 SK텔레콤 1조3,671억원, KT 1조3,427억원, LG유플러스 8,272억원이다. 시계를 6개월 뒤로 돌려 당시 올해 추정치와 비교하면 3개 회사의 영업이익은 각각 6.8%, 5.1%, 7.7% 감소하는 것이며 석 달 전인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각각 5.6%, 6.8%, 10.2%나 줄어드는 수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두고 업계의 실적 눈높이가 대폭 낮아진 셈이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3사 모두 5G 관련 유무형 상각비가 늘며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쳤다”며 “자회사 실적이나 외부 요인을 제거한 단독 기준으로 보면 감소폭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4·4분기 통신업계가 겪었던 ‘실적 쇼크’에서 벗어나기까지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분기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이 25.9% 감소한 것을 비롯해 LG유플러스나 KT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5G 망 구축에 OTT 경쟁…돈 쓸 데 곳곳=실적이 재무건전성을 갉아먹고 있는데도 여전히 통신업계가 앞으로 돈 쓸 곳은 널려 있다. 정부와 통신업계 등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는 올해 5G 기지국 구축과 연구개발 등에 많게는 3조원의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달 5G 상용화와 발맞춰 수도권과 주요 광역시 거점 중심으로 설치된 5G 망을 도시 주택가나 외곽지역까지 넓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 KT 아현 국사의 화재에 따른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정보통신재난관리심의위원회는 전기통신사업 매출 1조원 이상인 기업은 1~3년 이내 통신망을 이원화 혹은 우회로를 확보하도록 강제했는데 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SK텔레콤은 이와 관련해 총 1조~2조원가량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글로벌 경쟁도 치열한 상황에서 유튜브·넷플릭스 등에 대항할 국내 플랫폼 주자를 만들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통신업계의 수익원은 이미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는 OTT 플랫폼 합병을 결정하는 등 글로벌 OTT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울러 국내 시장 방어뿐 아니라 한류 열풍이 거센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면 궁극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얼마나 충분한 자본력을 확보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연간 콘텐츠에만 80억달러를 투자한다”며 “국내 업계 역시 대규모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선택약정·합산규제…성장판 닫는 정부=이처럼 통신업계가 갈 길은 먼데 정부 규제에 둘러싸여 실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업계는 토로한다. 당장 지난해 통신업계의 어닝쇼크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가계 통신비 인하 정책이었다. 25% 선택약정 할인 등으로 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이 꾸준히 감소하며 무선 분야 실적이 급전직하했다. 여기에 지난 5일 SK텔레콤이 7만원대 150기가바이트(GB) 요금제를 신청한 데 대해 정부가 중저가 요금제를 보완하라며 반려한 점 역시 업계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방송통신업계 합종연횡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마지막 이슈로 꼽히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논의도 업계의 관심사다. 지난해 6월 일몰한 이 제도가 다시 부활할지 여부가 이달 국회에서 논의되는데 규제가 살아날 경우 KT의 유선방송사업자 딜라이브 인수는 불가능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혁신성장의 주요 성과로 5G를 내세우면서 정작 업계에 대한 지원보다는 규제에 더 애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