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간 기싸움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방한한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20일 접견했다. DNI 국장이 북미관계가 험악해질 때마다 중재자로 나선 과거 전례가 있는 만큼 문 대통령과 코츠 국장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살려낼지 주목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코츠 국장의 접견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과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장은 한미 양국 간 현안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밝혔다. 앞서 코츠 국장은 이날 오전 서훈 국가정보원장이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먼저 만나 하노이 회담 과정과 후속 전략에 대한 한미 공조방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북제재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영국 및 독일과 밀착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코츠 국장이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 등 미국의 빅딜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단속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지난 15일 ‘대화중단 고려’ 주장이 나온 직후 강경 대응을 자제하던 미국은 최근 대북제재 압박 강도를 높이며 강공으로 돌아선 모습이다. 대북강경파로 알려진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19일(현지시간)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 실험을 재개한다면 대통령은 자신이 매우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실험 중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여러 차례 그에게 했던 약속”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도발 가능성에 대해 경고를 보내는 한편 단계적 비핵화 조치 등을 요구하며 태도 변화를 촉구한 최 부상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미국은 동맹국들에 대한 대북제재 단속에 나서며 북한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제재완화가 아닌 제재강화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대북제재와 관련해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이날 동맹국인 영국과 독일을 찾아 대북제재 공조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전날 한국을 찾은 코츠 국장의 행보도 동맹국인 우리 정부의 대북공조 이탈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벼랑 끝 전술을 펼쳤음에도 미국이 대북제재 압박수위를 높이면서 재차 공을 넘겨받은 북한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일 북미 비핵화 협상의 관련국인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국 주재 북한대사를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움직임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대책 마련과 연관이 깊다고 봤다. 서울경제신문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러시아 및 중국 대사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라며 “해당 나라와의 외교와 관련해 북한의 국익을 창출하기 위한 후속대책을 마련하려는 행보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서경펠로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전략적 환경 변화를 평가하기 위한 행동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가 나오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남 교수는 “최고인민회의도 아직 안 열렸고 4월 초 태양절 등 북한 내부행사도 있어 김 위원장의 성명이 단기간에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금 김 위원장이 성명을 내놓는다면 최 부상과 다른 얘기가 나오기 어렵고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중지·유예)’ 선언도 부담스럽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