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물려 가업을 잇는 가게나 기업, 일명 ‘시니세(老鋪·노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고급스러운 시니세들이 모여 있는 도쿄 긴자. 지난 1885년 창업 이래 이곳에서 134년째 영업 중인 넥타이·셔츠 전문점 ‘다야’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등 역사적으로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아온 긴자의 대표적인 노포다.
유행을 좇지 않는 높은 품질의 제품 덕에 3대가 이어 고객이 되기도 할 정도로 높은 평판을 자랑하는 다야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절전정책의 일환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장려하는 ‘쿨 비즈’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넥타이 판매가 급감하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다야는 가격을 낮추거나 유행에 편승하는 대신 100년 넘게 축적해온 염색기술을 바탕으로 색상에 깊이감을 더하고 다른 경쟁사에서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등 ‘내공’ 있는 제품력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이로 인해 기업 수요가 더욱 늘어나고 최근에는 해외 수출길까지 열리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기업 장수대국’ 일본에는 이처럼 100년이 넘는 전통 기업만 3만곳이 넘는다. 일본 기업정보 업체인 데이코쿠데이터뱅크(TDB)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100년이 넘는 일본의 전통기업 수는 3만3,259개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시니세도 즐비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에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환경과 고령화로 인한 사업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도산하는 노포와 전통 기업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 도산하는 전통 기업의 비율은 2011년 이후 8년 연속 30% 이상을 넘어서고 있다. 184년 역사를 자랑해온 도쿄 신주쿠의 화과자 제조업체 ‘하나조노만주’가 지난해 도쿄 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개시 결정을 받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야마나시현 니시야마 온천에 있는 ‘게이운칸 료칸’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53대째에 문을 닫아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반면 ‘다야’처럼 전통을 지키면서도 지속적인 혁신을 해온 전통기업들은 위기를 극복하며 또 다른 100년, 200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1876년 창업한 교토의 오이케공업은 초기 자수 실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었지만 시대 변화에 맞게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특수 전자 재료인 투명전극(ITO) 필름 시장에 진출해 지금은 관련 분야에서 세계 선두 기업으로 거듭났다. 1688년 창업한 교토의 전통 직물업체 호소오는 해외 명품브랜드나 예술작가와의 협업, 첨단연구를 통한 새로운 직물 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12대째 가업을 잇는 호소오 마사타카 상무는 미 메사추세츠공과대(MIT)의 특별연구원이기도 하다.
일본 전통학연구회의 마에 요이치로 대표는 “성공적으로 전통을 이어온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혁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여러 세대를 걸쳐 회사 경영을 하다 보면 지진이나 전쟁,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등의 외부 요인으로 기존 방식의 경영이 통하지 않게 되는데 이때 혁신을 통해 극복해온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