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이은 방송사고에 휘청대는 K드라마

21일 SBS 드라마 '빅이슈' 방송사고에 시청자 황당

지난해 주 68시간 근로시간 제한 합의했지만

제작사들 하루 20시간 주 3일 근무 '꼼수'로 회피

방송 스태프들 "제작 환경 개선 없인 K드라마도 없다"

지난 21일 SBS TV 수목드라마 ‘빅이슈’에서 특수효과 미완성과 관련한 방송 사고가 발생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방송 사고를 계기로 한국 방송계의 열악한 제작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방송계에 따르면 ‘빅이슈’의 21일 방영분에서는 ‘창 좀 어둡게’,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다 지워주세요’ 같은 CG작업 요청 자막이 그대로 나왔다. 또 병실 장면에서는 텔레비전에 덧씌울 화면이 제대로 편집되지 않아 따로 놀기도 했다. SBS 측은 다음 날인 22일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향후 방송분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촬영 및 편집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과했지만 시청자들의 당혹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구체적인 방송 사고의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경제신문이 사고 경위를 알기 위해 SBS 드라마 운영국에 연락했으나 “제작사에 문의해 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빅이슈 방송사고 화면(SBS 제공)빅이슈 방송사고 화면(SBS 제공)



잊을만하면 터지는 방송 사고에 방송 스태프들은 “열악한 제작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지만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 듯 보인다. 실제 22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 지부는 “지난달 몇몇 프로그램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지만 노동청은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이대로는 프로그램이 끝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스태프 등 제작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드라마의 ‘한류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방송사고는 더 잦아지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례로 지난 2017년 tvN 드라마 ‘화유기’도 수차례에 거쳐 비슷한 방송사고를 낸 바 있다. 송출 사고뿐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조명을 설치하던 스태프가 추락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후 사고를 당한 스태프가 하루 17시간이 넘게 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연일 이어지는 방송 사고의 원인이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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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 사무차장은 “SBS 측은 기술적인 결함이라고 해명하지만 핵심은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제작이 불가능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모든 일이 급박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방송 제작 현실에 있다”고 말했다. 한빛센터는 격무에 시달리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故) 이한빛 PD의 이름을 기려 설립된 센터로 방송노동자 인권과 방송제작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한 드라마 업계 관계자 역시 “통상적으로는 마지막 편집 과정이 있어 내부 제작진이 이런 실수를 모를 수가 없다”며 “단순한 실수라기 보다 내부 일정에 쫓기다가 발생한 일일 듯”이라고 추측했다.

홍 사무차장은 이어 “드라마는 제작기간이 곧 제작비와 직결되기 때문에 방송사와 제작자 측에서는 제작 기간을 최대한 압축해 드라마를 찍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외주제작사의 경우 제작 비용을 모두 포함한 ‘턴키(일괄 수주)’ 계약으로 이뤄지기에 스탭들의 일일 노동 시간은 무한정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 드라마 스태프의 경우 “스태프 대다수는 일급으로 돈을 받기에 하루에 20시간 촬영하든 10시간 촬영하든 받는 돈이 같다”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하루에 몰아서 오래 찍는 방식이 돈을 아낀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공영방송사 KBS의 드라마 제작 현장에 특별근로관리감독 실시를 촉구하는 한빛센터/한빛센터제공공영방송사 KBS의 드라마 제작 현장에 특별근로관리감독 실시를 촉구하는 한빛센터/한빛센터제공


대다수 방송업 종사자들은 지난해 비로소 드라마 스태프가 노동자로 인정받게 돼 주 68시간 근로시간 제한 등이 도입됐지만 정작 제작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호소한다. 대부분 제작사들은 주당 근로시간 68시간은 준수하지만 1일 20시간씩 주 3회 방송 노동자를 근무시키는 식의 ‘편법’을 통해 여전히 비용 줄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홍 사무차장은 “명백히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개선의 의지를 가진 사람도, 단속하는 사람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홍 사무차장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 등 중앙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빛센터가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 등 노동 여건이 열악한 다수의 현장에 방문해 캠페인을 벌이고 근무여건 개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도 대개는 개선되지 않은 채 드라마가 종영됐다는 것이다. 드라마 현장은 주로 3개월에서 6개월 단위의 짧은 프로젝트 방식으로 구성됐다가 드라마가 종영되면 해체되므로 지속적인 관리 감독이 어려운 지점도 있다. 홍 사무차장은 “관리감독을 요청해도 노동부는 모든 현장에 보낼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극한의 노동 강도를 직접 경험하는 방송 노동자들과 그저 글로만 고통을 접하는 노동부의 온도 차가 느껴지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신화 인턴기자 hbshin1207@sedaily.com

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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