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금이 발견되면서 개척민들이 돈을 벌려고 금광으로 몰려들었다. 이른바 골드러시다. 독일계 유대인으로 미국으로 건너왔던 리바이 스트라우스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은 리바이는 가족들과 함께 텐트용 천막 재료 공급 사업을 했다. 당시 광부들은 급증했는데 제대로 된 숙소가 없어 천막이 잘 팔렸기 때문이다. 한 직원의 실수로 의뢰주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파란색 물을 들여놔 대량의 악성재고가 발생했다. 리바이는 고심하다 이걸로 광부용 바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광부들의 바지는 얇은 면바지로 하루만 입어도 찢어지고는 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은 값이 싼데다 오래 입을 수 있고 오물도 잘 침투하지 않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청바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1873년 아예 청바지 관련 특허를 내고 청바지 사업에 주력했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도 ‘리바이의 것’이라는 뜻으로 그의 이름을 땄다. 1890년대에는 리바이스 501이 대박을 치면서 미국 서부에서 유명 업체로 부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동부 사람들은 ‘광부나 카우보이 같은 경박한 서부 놈들이나 입는 옷’ 정도로 무시했다. 청바지는 1차대전 후 미 전역으로 퍼졌고 1960~1970년대에 히피 운동이 확산되면서 세계적인 옷이 됐다. 자유·반항 등 젊음의 아이콘이 됐다. 리바이스는 1970년대 중반에 35개국에 2만명을 고용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골드러시 때 금맥 찾아 나선 사람보다 청바지 회사가 돈을 더 벌었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한국에는 1983년 국제그룹 계열 조광무역이 이 브랜드를 도입해 라이선스로 생산·판매하다가 리바이스코리아 직판체제로 바뀌었다. 현재 한국의 청바지 시장은 게스·캘빈클라인·버커루 브랜드가 3강을 형성하고 있고 리바이스는 그 뒤로 밀려 있다. 실제 판매량 매출 1위는 국산 뱅뱅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원조 리바이스가 압도적인 원톱이다. 리바이스가 올해 미국 증시 최대 공모액인 7,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며 뉴욕증시에 입성해 지난 21일부터 거래를 시작했다. 1971년 상장됐었지만 실적 악화 끝에 1985년 상장 폐지됐다가 청바지의 유행이 돌아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회복하자 재상장된 것이다. 청바지 복고풍 속에 리바이스의 상승세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오현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