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과 성매매특별법 위반,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음주 과속, 공공시설 파손, 공무집행 방해, 배철호 기사 폭행 및 살인미수, 경찰관 살인교사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지금부터 묵비권(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
영화 ‘베테랑’에서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이 도주하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를 추격해 끝내 맞닥뜨린 뒤 처음으로 건넨 말이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듯 살아온 조태오를 바로 체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서 형사는 구구절절 조태오의 권리부터 설명한다.
서 형사의 고지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으로 유명한 인권 보호 장치다. 지난 1963년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18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에서 따왔다. 1966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묵비권과 변호사 도움을 받을 권리를 듣지 못했다는 미란다의 주장을 받아들여 하급심 판단을 모두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려지면서 유래했다.
이 같은 원칙은 우리나라에도 1997년 1월 도입됐다. 하지만 미국의 예나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헌법 제12조 5항은 ‘누구든지 체포·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않고 체포·구속을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또 형사소송법 제72조는 ‘피고인에 대해 범죄사실의 요지,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준 후가 아니면 구속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검찰·경찰 수사 등에 적용되는 한국판 미란다 원칙의 핵심은 △범죄사실의 요지 △체포·구속의 이유 △변호사 선임 권리 △변명할 기회 등 4가지다. 묵비권과 법정에서 진술이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 등은 굳이 알려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 원칙적으로는 “당신을 XX죄로 체포한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다” 정도면 충분한 고지다. 다만 경찰은 지난 2월12일 부로 묵비권 역시 고지하도록 내부 지침을 바꿨다. 법 개정사항이 아니라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