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귀여운 외모를 뽐내며 100만 랜선 이모들을 단숨에 집결시킨 독특한 셀럽견이 있다. 일명 ‘인절미’라 불리는 리트리버다.
특유의 순둥함을 자랑하며 전 세계 으뜸 인기견종으로 손꼽히는 리트리버에겐 인절미 외에 또 다른 별칭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다.
노란 조끼를 입고 하네스(harness·동물의 등에 두르는 줄이나 손잡이)를 착용한 리트리버견은 시각장애인에게 ‘제3의 눈’이 돼 그들을 세상과 연결해준다.
‘때론 순둥하게 때론 든든하게’ 평범한 리트리버 강아지가 안내견으로 거듭나기까지에는 특별한 능력을 불어넣는 조력사가 있다. 서울경제썸이 시각장애인에게 ‘눈’이 되고 ‘희망’을 함께 만들어 주는 안내견 훈련사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16년차 안내견 훈련사 홍아름(36)입니다. 시각장애인 곁에서 눈이 되어주는 안내견을 양성하고 있죠.
길을 걷다 갑자기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마주친다면? |
2002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 입사해 약 9년간 엄마 개와 아빠 개를 교배시켜 태어난 개를 돌보는 견사·번식 업무를 담당해왔어요. 안내견에 적합한 견종인지, 종견(Stud Dog)과 모견(Brood Bitch)의 상태는 양호한지 등을 체크해 교배하는거죠. 2011년부터는 안내견 훈련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먼저 생후 5주된 강아지를 증명사진을 찍어 장애인보조견으로 등록합니다. 생후 7주 때 퍼피워킹(Puppy Walking)과정을 거치는데요. 예비 안내견이 일반 가정에서 1년간 지내면서 사회화 과정을 배우는 단계죠. 이 기간엔 사람과 어울리면서 식사와 배변 등의 예절 교육을 받습니다. 생후 14개월에는 다시 학교로 복귀해 7~8개월 정도 본격적인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세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 통과되면 안내견이 되는거죠.
보통 훈련사 한 명당 5~6마리의 강아지와 훈련을 합니다. 오전 8시에 학교로 출근해서 강아지들 건강 체크하고 배식·배변 정리를 합니다. 오후에는 용인 재래시장 일대나 분당 수내역 등 도심으로 가서 야외 훈련을 하는데요.
매일 한 마리당 1시간씩 지하철·인도·횡단보도 등 공공장소를 다니면서 대응 훈련을 합니다. 이후 학교로 복귀해 강아지들은 휴식을, 훈련사들은 일지 작성을 하고 일과를 마무리 합니다.
처음엔 동물이 좋아서 동물원 조련사가 되고 싶었어요. 평소 쉽게 키울 수 없는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수십 마리 강아지들과 동고동락해보니 만만치 않더라고요. 매일 15km씩 걸어다니며 훈련하고 교배·배식·배변 처리까지 체계적으로 관리 해줘야하니까요. 그래도 벚꽃 흩날리는 산책로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강아지들과 같이 호흡하면 활력을 얻게 되더라고요. 특히 잘 훈련된 안내견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있을 때면 안내견 훈련사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내견 훈련사가 되기에 딱히 유리한 전공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사회복지학·특수교육학·행동심리학·애견 관련 등의 전공을 하면 배경지식을 이해하는데 도움되겠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인 것 같아요. 일하다 보면 감정을 추스르고 억제해야 할 때가 많거든요. 훈련사가 안내견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안내견의 행동이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합니다.
물론 훈련을 받았다고 모두 안내견이 되는 건 아니에요. 안내견 학교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는 7~8개월 동안 체력·공격성·품행 등 항목이 포함된 세 차례의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안내견이 될 수 있어요. 합격률은 30% 정도로 1년에 대략 12마리가 배출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 활동하고 있는 안내견은 총 60여 마리고요.
안내견이 되면 퍼스널 매칭 과정을 거쳐 분양을 원하는 시각장애인을 만나게 되는데요. 분양을 원하는 시각장애인의 성격, 직업, 보행 습관, 건강상태 및 생활 패턴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안내견을 찾는거죠. 정식 분양된 후에는 약 8년간 시각장애인과 함께 활동합니다.
국내에서 세계안내견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기관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유일합니다.
학교 전체 직원은 약 15명 정도고요. 그 중 안내견 훈련사는 6명입니다. 안내견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이나 안내견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경우 약 1만여 마리, 일본은 900여 마리의 안내견과 100여명의 훈련사가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에 비하면 한국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죠. 특수 전문직이라 흔히들 연봉 처우도 특별할 거라 생각하는데 저희는 삼성 소속이기 때문에 회사 내규에 맞춰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이라는 말보단 ‘교육’을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처럼 잘하는 것엔 확실히 칭찬하고 잘못하더라도 기다려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긍정강화형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통하니까 답답하다고 생각하지만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 부분에서 사람과 똑같거든요.
지금까지 제 손을 거쳐 안내견이 된 강아지는 총 20마리정도고요. 합격 전까지 포함하면 약 80여마리 강아지와 동고동락했어요.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우수한 안내견이 돼 사회로 나갈 때면 좋으면서도 아쉬움에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정이 든 만큼 헤어짐이 아쉽지만 그만큼 매순간 더 교감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흔히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을 대신해서 모든 걸 다 해줄거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안내견은 ‘눈’의 역할이지만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해주는 로봇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도 횡단보도가 다가오면 시각장애인이 먼저 캐치하고 안내견에게 ‘멈춰’ 혹은 ‘가자’라고 말해줘야하는거죠. 사람과 동물의 케미가 잘 맞아야 합니다.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견종은 래브라도 리트리버예요. 대체적으로 온순한 성격에 친화력이 좋으면서도 인내심이 강합니다. 또 시각장애인이 위험한 곳으로 가면 못가도록 끌어당길만큼 힘이 세기 때문에 안내견으로 적합하죠. 전세계 안내견의 90% 정도를 리트리버 종이 차지하고 있는 이유죠.
안내견은 10살무렵 은퇴하게 되는데요. 리트리버종의 평균 수명이 13년 정도기 때문에 고령인 나이를 감안해 편하게 쉬도록 배려하는거죠. 은퇴한 안내견은 퍼피워킹했던 가정에 돌아가거나 입양을 원하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생활하게 된답니다.
한 마리의 안내견이 탄생하기까지 약 2년간 훈련기간이 걸리고요. 교육하는데 드는 사육비, 진료비 등 총 비용은 약 1~2억 정도 듭니다.
최근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면서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공공장소 내 안내견 동행을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특히 리트리버가 대형견이다 보니 입마개 착용을 요구하기도 하죠. 그럴 경우 양해를 구하거나 충분한 설명을 하면 이해해주시더라고요. 항상 반려동물 가족들이 좀 더 신경 쓰고 주의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반려동물 가족들이 먼저 에티켓을 지켜준다면 일반인들도 존중해주면서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당연히 제 손을 거친 강아지들이 시각장애인에게도 희망을 주는 안내견으로 성장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예요. 물론 안내견으로 선발되지 못하더라도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고요.
제 삶을 들여다보면 24시간 늘 ‘강아지’가 함께하는 것 같아요. 업무 시간엔 예비 안내견들과 산책하면서 훈련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또 제 반려견과 알콩달콩 추억만들기에 푹 빠져있거든요. 떼려야뗄 수 없는 운명인가봐요.(웃음)
/정가람기자·정선은인턴기자 gara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