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TV·방송

[SE★초점]'동네변호사 조들호2'의 뼈아픈 패착, 조들호 빼고 다 잃었다

사진=KBS사진=KBS



“아직 우리에겐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그 정신이 바로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정신이죠.”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조들호의 정신이자 매력이었다. 할 말 많지만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이들을 위한 속 시원한 ‘한 방’. 고구마 두어 입 먹고 사이다 반컵 꿀꺽꿀꺽 마시며 ‘캬’ 내뱉는 탄성. 이 사이다 매력을 앞세워 2016년 방영된 ‘동네변호사 조들호’ 시즌1은 최고시청률 17.3%를 기록하며 열성적인 팬들을 만들어냈다.


반면 3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2’의 퇴장은 이전 시즌에 비해 초라하다. 27일 마지막 방송을 앞둔 가운데 시청률은 7.8%(닐슨코리아/전국)로 이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고구마 먹고 또 고구마 먹고, 사이다 대신 물 마시는 듯 뻑뻑한 전개 탓에 혹평만 쏟아지고 있다.

사진=KBS사진=KBS


▲ 제작발표회 無, 연출·작가교체 의혹, 박신양 수술까지

지난해 고현정의 ‘리턴’ 하차 논란을 의식한 탓일까 ‘조들호2’는 제작발표회 대신 1·2화 ‘시사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 나온 한상우 감독은 “1편과 비슷하면 ‘왜 만들었냐’는 말을 듣고, 완전히 다르면 ‘이러려면 왜 했냐’는 말을 듣는다”며 “시즌1이 동네 울타리 안의 이야기였다면, 시즌2는 대한민국 전체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국가적 한을 풀어주겠다는 의도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소재가 유치원 급식이나 가습기 살균제 등 소시민들의 피해들을 연결한 에피소드로 사랑받았던 ‘동네 변호사’라는 캐릭터와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걱정이 많았다. 한 감독은 “수임하는 사건의 속성이 달라졌다 보시면 된다”고 설명했으나, 수임한 사건이 거대해도 너무 거대했다.

뜻하지 않은 악재도 쏟아졌다. 방송 1주일 만에 한상우 PD가 메인 연출에서 물러난다는 의혹이, 23일에는 박신양이 허리디스크로 긴급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월에는 배우 변희봉과 이미도, 조달환이 중도 하차한다는 설이, 2월 15일에는 작가 교체설이 불거졌다. 제작사 측은 하차와 교체설 모두 부인했으나, 배우들의 중도하차는 사실상 들어맞았고, 에피소드별로 집필한다는 작가의 이름은 현재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사진=KBS사진=KBS


▲ 사이다 없는 법정대결, 통쾌한 ‘역전재판’은 없었다

지난 시즌 조들호의 법정은 ‘밀릴 듯 밀리지 않다가 한방에 재판을 뒤집어버리는 통쾌한 맛’이 일품이었다. 딱딱한 변론을 유쾌하게 끌어가는 대사의 매력도 일품이었다. 마치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듣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변론으로 세상에 억울한 일 많은 소시민들의 마음속에 톡 쏘는 후련한 맛을 선사했다.


대기업과의 정면대결을 그린 이번 시즌 조들호는 끊임없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법정에서의 논리 대결이 아닌 대기업과의 힘 대결에서 밀리는 양상이 뚜렷했다. 온갖 함정과 폭력에 일어설 듯 하다가도 결정적 순간 주저앉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조들호2’는 가장 큰 매력을 잃고 말았다.



26일 마지막 법정 대결이 된 대산복지원 관련 재판 역시 싱겁게 끝났다. 측근의 배신, 이자경의 매수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조들호는 윤소미(이민지)와 강만수(최승경)가 이재룡(김명국)의 파일 비밀번호를 풀어내면서 기사회생했다. 이를 앞세워 이자경(고현정)도 법정 구속시켰다. 가장 극적인 순간 결정타에 빈틈이 숭숭 뚫린 법정드라마의 전형을 따랐다.

사진=KBS사진=KBS


▲ ‘현실’로 흥한 드라마에서 춤추는 비현실적 악역 캐릭터

‘리턴’ 이후 검증된 드라마로 재기를 노렸던 고현정에게는 참 안타까운 작품이 됐다. 그가 연기하는 이자경은 ‘대산복지원에서 동생을 잃고 피로써 이들에게 복수하려는’ 뚜렷한 성격의 인물이지만 냉철함과 복수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일부 시청자들은 피곤한 얼굴, 풀린 눈, 더듬는 말투, 느린 움직임 등을 지적하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이자경과 조들호가 동시에 노리는 국일그룹의 2세 3인방의 캐릭터도 빈틈이 많다. 돈 많고 머리는 나쁜 전형적인 드라마 속 재벌2세 캐릭터로, 굴러들어온 돌 이자경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채 끌려다니기만 했다. 이들의 아버지이자 국일그룹 회장 국현일(변희봉) 역시 웃음 뒤에 잔인함을 감춘 인물로 설정됐 ‘과하게 포장된 탓’에 변태적 이미지로 소진됐다.

사진=KBS사진=KBS


▲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나

‘조들호2’의 이야기구조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대산복지원에 끌려가 동생을 잃은 이자경의 핏빛 복수와 이들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조들호의 대결이 중심이다. 이들의 대립 끝에는 대산복지원을 통해 기반을 쌓은 국일그룹과 부패한 정치인들의 결탁으로 사회적 비판 메시지도 담겨있다.

조들호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윤소미(이민지)의 아버지 윤정건(주진모)이 과거 대산복지원과 연루됐다는 설정은 이자경의 복수가 잘못된 선택이지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을 모티프로 법적 처벌할 수 없는 과거사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갖가지 구설수와 과한 설정, 자극적인 장면 등은 ‘이야기’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특히 초반 비주얼에 집중한 결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많은 시청자가 빠져나가 버렸고, 마지막회에 다다른 시점에서도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평이 많다.

박신양과 고현정, 그리고 발연기 없는 배우들이 뭉친 만큼 욕심을 버리고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조들호가 30년 묵은 형제복지원의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줬다고. 이들의 처벌에 대한 담론에 불을 붙였다고 평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이어지고 있다.

최상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