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상범 논설위원의 청론직설] "강제징용 배상 뇌관 5월이 고비…이젠 대통령이 결단내려야"

■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한일관계가 갈등의 악순환에 빠져들면서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한일관계가 무너졌을 때 우리가 어느 정도의 손실과 피해를 당할 것인지를 냉철하게 계산해봐야 한다”며 “국익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한일관계가 갈등의 악순환에 빠져들면서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한일관계가 무너졌을 때 우리가 어느 정도의 손실과 피해를 당할 것인지를 냉철하게 계산해봐야 한다”며 “국익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다. 지난해 위안부 문제로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초계기 레이더 사태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까지 겹쳐 강대강 양상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독도 역사 왜곡까지 겹치는 등 그야말로 전방위에서 악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벼랑 끝으로 치닫는 한일관계의 돌파구는 없는지,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인지를 듣기 위해 한일관계 전문가인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를 서울 정릉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과거사 문제는 국민 정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쉬운 주제”라며 “이 얘기만 나오면 어떤 합리적인 대일외교도 설 땅이 없어진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또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양국 경제에 충격을 가져올 대형 악재”라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지도자들의 고뇌의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악화일로 한일관계 계속 방치땐


일본도 자산동결 등 보복가능성

국제사법재판소 제소가 합리적



-최근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변에서 한일관계가 지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종합적으로 볼 때 최악은 아니다. 인적 왕래가 많이 늘었고 경제지표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무적 외교관계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언행이 차갑고 대중의 혐한 분위기도 강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게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줄 수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관계는 최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일관계를 갈등의 늪으로 몰아넣은 요인은 뭔가.

△일련의 사태를 보면 네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일방적으로 해산함으로써 일본 측에서 정권이 바뀌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양국 간의 초계기 레이더 논란 역시 서로 도발이라며 맞서고 있다. 대북문제도 온도 차가 크다. 우리는 북한을 포용하고 비핵화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반면 일본은 엄격하게 따지고 미사일 문제까지 고려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대북협상에 훼방을 놓는다는 시각도 있다.

21일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이호재기자. 2019.03.21


-어느 것 하나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인 듯하다. 해법은 없나.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문제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파기하지 않겠다, 재협상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악재는 아니다. 안보갈등은 레이더 탓이 아니라 한일관계 악화가 안보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과거사 갈등이 커지다 보니 협력을 당연시했던 안보 분야까지 흔들린다는 얘기다. 대북관계도 온도차는 쉽게 해소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국이 싸울 문제도 아니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동북아 공동번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협력할 길이 열려 있다.

-그럼 결국 강제징용 문제가 남는데.

△내가 가장 걱정하는 현안은 징용자 배상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 인식이 너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크다. 배상 문제라는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는데 오는 5월쯤 터질 것으로 본다. 현재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액을 지급하게 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 조치에 이어 신일철주금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하고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5월 이후 한일관계는 말 그대로 극단적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는데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은 대응조치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100가지 보복방안을 준비했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보복관세나 비자 제한, 반도체 핵심부품 금수 조치 등이 거론되지만 일본도 아플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도 있어 엄포용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있는 한국 기업의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는 가능하다. 한국이 국내법으로 일본 기업을 때려잡는다는 주장을 내세워 대항조치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극약처방은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철수다. 일본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여론전에 나서는 것도 불 보듯 뻔하다. 우리도 투자기업 몰수와 관련한 국제 여론전에 맞설 채비를 갖춰야 한다.

-강제징용자 배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실제 배상규모나 범위는 어느 정도인가.


△징용자는 정부가 파악한 것만도 21만명에 달하고 구체적인 증거자료 제출자만 7만2,000명이다. 대법원에서 1인당 위자료를 1억원으로 계산한데다 지연금 20%까지 붙어 모든 분이 일본기업이나 한국 정부를 상대로 유사한 소송을 걸 경우 최대 15조원이 소요될 수도 있다. 물론 전원이 소송을 한다면 최대한 그렇게까지 추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법원에 계류된 관여자만도 900명이며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외하고도 14건이 기다리고 있다. 2009년 우리 정부는 징병징용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가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면서 적시된 내용을 보면 우리 정부가 총액을 일본으로부터 받아 개인 피해자에게 나눠준다고 약속했다. 당시 우리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결론 아래 약 7,600억원을 사용했다. 당시 신고를 받았더니 14만여명이 신청했고 7만2,000명이 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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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은 어떤가.

△난제를 푸는 해법 중 하나는 ICJ에 재소하는 것이다. 재판관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중남미 각각 3명씩, 동유럽 2명, 서유럽 4명으로 구성돼 유리한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승패를 떠나서라도 국제사회의 판단을 받아서 나쁠 것은 없다고 본다. 만약 진다면 국제사회의 냉혹한 규칙을 알고 국제규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 측면에서도 4년 정도의 재판기간에 두 나라 모두 정권이 바뀌고 국제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퍼지면 중도에 화해할 공산이 크다. 양국 정부와 청구권 수혜기업, 징용 대상 기업이 2+2로 만나 화해조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대법원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해외 사례를 봐도 최고법원은 외교 문제에 대해 될수록 개입을 회피하는 사법소극주의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때마침 사법거래 파동으로 대법원이 서둘러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국내 정치가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리더는 비난 감수할 용기 필요

외교적 행위 판단 근거는 국익

싸우더라도 비핵화 등 협력을



-정부도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겠나.

△여러 차례 개인적으로 건의했지만 정부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듯하다. 기금 안도, 국제사법재판소 안도 국민이 수용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보는 것 같다.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한다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 사실 기금 방식으로 가지 못하는 것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형해화하고 재단도 없애더니 징용자재단을 만드는 건 뭐냐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위안부 합의 검증 시 내걸었던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슬로건을 적용해볼 때 기금방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려도 리스크가 따르게 마련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도 굉장히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고 봐야 한다. 위안부 합의가 국내에서는 욕을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모름지기 리더란 국민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가야 하고 그런 결정의 중요한 판단 기준은 국익이다.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리스크는 본인이 감수하는 게 지도자의 몫이다. 길이 보이는데도 정부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21일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이호재기자. 2019.03.21


-과거사 문제 때문에 미래로 못 나아간다는 얘기도 많다.

△진영 싸움이 격화되다 보니 대일외교 문제도 투쟁의 소재로 활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친일청산만 하더라도 지금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다. 80년이나 지난 얘기를 꺼내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 어떤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역사 청산이라는 명제 그 자체는 부정하고 싶지 않은데 그에 따른 부작용을 생각해보면 너무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본도 국내 정치에 과도하게 한일관계를 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아베 신조 총리가 다른 지도자에 비해 혐한이 강하다 보니 한국을 때리는 모습이 얄미울 정도다. 레이더 사태만 해도 해프닝인데 일부러 도발 운운하며 우기는 데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4월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선거를 고려할 때 한국과 적절히 타협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경제 주름살이 걱정이고 무역에 영향을 주거나 청년 취업에 제약을 받는다면 심각한 문제다. 지금은 우리가 상당 부분 일본을 넘어섰는데 일본 탓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미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일본과 거의 같아졌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외교행위나 정책은 국가의 이익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진영 내의 정치적 이익이 있을지 몰라도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논리라야만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이 일왕의 양위로 들썩이고 있다.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일본은 일왕 양위에 대해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일왕이 바뀔 때 외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는 4~5월에 한일외교는 나락으로 빠지고 일본 외교는 축제 분위기일까 봐 걱정이다. 일본은 각국 정상들을 초청해 전방위 외교를 하는데 한반도 문제만 올스톱이라면 일본에서 역으로 선전할 수 있다. 내년에는 도쿄올림픽도 열려 평화국가와 번영의 이미지를 전파하려는 와중에 우리가 이기기 어려운 싸움을 걸어놓고 뒷감당이 안 되는 상황으로 가면 안 된다. 지도자가 이를 감수하고 결단해줘야지 누가 할 수 있겠나. ssang@sedaily.com

● He is…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94년 도쿄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국민대 국제학부로 옮겨 피츠버그대 방문연구원, 도쿄대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소장과 현대일본학회 회장, 외교부·통일부·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간사 등을 두루 거쳤다. 주요 저서로는 ‘한일과거사 처리의 원점’과 ‘일본우익연구’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한일관계 1965-2015 정치’ 등이 있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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