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S머니-치매보험 돌풍의 그늘]경증치매 보장에 손해율 100% 넘어...'제2양로보험' 되나

2년 임기 CEO '실적 조급증'

5년내 부실 알지만 판매경쟁

진단 허술하고 보장범위 넓어

약관상 지급기준도 애매모호

'치매보장 안되는 치매보험' 논란




최근 보험업계에서 가장 핫한 상품은 단연 치매보험이다. 과거에도 치매보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는 치매보험은 가벼운 경증치매와 중증도 치매(경증과 중증 사이)까지 보장해 올 들어서만 수십만명의 신규가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특히 치매가 걱정되는 보험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보험사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당장 내부적으로도 보험금이 과다하게 책정됐으며 향후 손해율 급증으로 10년, 20년 후의 실적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단기간 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거의 판매되지 않는 양로보험이나 요실금보험·치아보험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임기가 2, 3년에 불과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임기 내에 단기적으로 실적을 끌어올리려고 무리하게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끈 치매보험은 한화생명의 ‘(무)간병비걱정없는치매보험’이다. 지난 1월 출시돼 2월 말까지 11만명이나 가입했고 3월 말 기준으로는 16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흥국생명은 앞서 지난해 7월 ‘(무)가족사랑치매간병보험’을 출시해 2월 말까지 약 13만7,000명이 가입했다. 현대해상과 메리츠화재도 지난해 11월 치매보험 판매를 개시해 지금까지 각각 약 4만3,000명, 2만9,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KB손해보험도 올 1월부터 현재까지 2만명을 끌어모았다. 보험사들의 치매보험 출시가 잇따르고 있는데다 판매 경쟁도 치열한 만큼 앞으로도 가입자 수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출시되는 치매보험의 매력은 넓은 보장 범위와 높은 보험금이다. 예를 들어 물건 위치나 기억력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경증 치매 진단을 받으면 2,000만원을, 더 심한 중증도치매 진단을 받으면 다시 3,000만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치매 진단이 내려지면 매월 간병비·생활자금까지 최대 1억원을 보장해준다. 과거의 치매보험은 전체 치매환자의 2.1%에 불과한 중증치매만 보장했고 보험금도 더 적었다.


보험 소비자 입장에서는 득이 되는 상품이다. 평균 수명이 이미 80세를 넘었고 앞으로 100세 시대가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질병 중 하나인 치매를 폭넓게 보장해주고 간병비·생활자금까지 지급해 가족들의 고통도 덜어주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75만명 수준이었던 60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인구고령화와 함께 2025년 108만명, 2050년 303만명으로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기사



문제는 경증치매를 보장한다는 대목이다. 한 보험사 고위관계자는 “경증치매는 의사의 문진과 MRI 소견만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며 “이미 일부 의사들이 공격적으로 경증치매 진단을 내려준다는 소문이 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의 진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이를 악용해 경증치매 진단금을 타내는 보험사기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감독원도 이미 이달 중순께 각 보험사에 공문을 통해 “보험사기 예방을 위해 계약심사 등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경증 치매에 수천만원을 일시 지급하거나 중증 치매 환자에게 일정 금액을 종신 지급하는 보험상품의 경우 재보험 가입이 거절되기도 했다. 중복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는 한 명이 여러 개의 치매보험을 들어 수억원의 진단금을 챙길 수 있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치매보험의 인기몰이가 과거 양로보험·치아보험처럼 보험사에 ‘저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경증치매까지 보장 범위를 넓힌 상품이 출시된 지 아직 수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당장 손해율을 따질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경증치매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의 손해율이 향후 100%를 넘어설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수년 전 인기를 끌었던 저축성 보험인 양로보험도 시중보다 높은 이율을 보장해야 해 보험사의 판매 중단으로 이어졌고 출혈경쟁을 일으켰던 치아보험 붐도 결국 판매가 중단되거나 보장이 축소됐다.

치매보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불완전판매에 관한 민원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잇따라 출시되고 있는 무해지환급형은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하고 보험료 납입 기간이 끝난 후에는 납부한 보험료보다 더 많은 환급금을 받을 수 있지만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해지하면 환급금을 받을 수 없다. 또 보장성 치매보험의 경우에는 가입 이후 20년 이상 보험료를 납입해야 낸 돈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최근 치매보험 판매 경쟁과 높은 판매수당에 휩쓸려 설계사들이 이 같은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더구나 경증치매는 CT·MRI 이상소견이 희박한데 약관에는 이상소견시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적시돼 있는 등 지급기준이 모호해 정작 ‘치매보장이 안되는 치매보험’이라는 논란도 벌써 나오고 있다. 이처럼 치매보험 약관이 허술하고 보장범위는 크지만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판매경쟁에 나서는 것은 내수시장 포화로 쪼그라든 외형을 만회하기 위해 임기 내에 성과를 보이려는 CEO들의 집착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치매보험 같은 정액보험은 실손보험과 달리 보험사기의 여지가 너무 많다”며 “경증치매 진단, 중복가입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치매보험이 계속 출시되는 것은 당장 CEO 본인의 임기 내에 손해가 닥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주희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