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몰래 들어간 마약 중 4분의 1은 이 사람을 거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미 마약계의 큰손이자 희대의 탈옥수인 호아킨 구스만이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브랜드를 아내를 통해 만든다. 음지에서 쌓은 유명세를 양지에서 돈으로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미국 정부가 수익금을 몰수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도 높다.
CNN방송은 구스만의 이름을 딴 패션브랜드가 올해 출시된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미 유죄판결을 받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인 구스만은 지난 2월 중순 자신의 이름과 서명에 관한 지식재산권을 아내인 엠마 코로넬이 경영햐는 회사에 양도했다.
이 회사의 공식 명칭은 ‘엘 차포 구스만(El Chapo Guzman)’으로, 올해 여름부터 의류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현재 야구 모자, 티셔츠, 진 재킷, 휴대전화 케이스 등의 디자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코로넬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돼 너무나도 신이 난다. 우리 부부가 몇 년 전부터 구상한 아이디어에 기초한 사업”이라며 “우리 딸들에게 바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미인대회 입상자 출신인 코로넬은 구스만과의 사이에서 낳은 7살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음지에서 부를 쌓은 이 부부는 이제 합법적 경제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구스만의 변호인 마리엘 콜론 미로는 “코로넬이 많은 디자인을 감독할 것”이라면서 “멕시코 경제를 돕고 일자리와 기회를 더 많이 창출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이 멕시코에서 (의류를) 생산하고 싶다”고 전했다.
멕시코 최대 마약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을 1970년대 후반부터 이끌어 온 구스만은 164㎝의 작은 키 때문에 본명보다는 엘 차포(난쟁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구스만은 198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으로 200톤이 넘는 마약을 내다 팔았으며 당시 미국으로 몰래 들어간 마약 중 4분의 1은 구스만을 거쳐 유통됐다는 추산도 있다.
구스만은 주로 미국과 멕시코를 잇는 땅굴을 파 마약 운반 통로로 썼는데 발견된 땅굴만 60개가 넘는다. 땅굴뿐 아니라 트럭과 자동차, 비행기, 기차, 선박 등 다양한 경로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유통했다. 그는 마약 밀매뿐 아니라 돈세탁과 불법 무기 소지, 살인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가 두목으로 있는 시날로아 카르텔은 암살자를 고용해 ‘보복 살인’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스만은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에게 미 연방수사국(FBI) 10대 지명수배자 1위를 내줬지만 빈라덴이 죽은 2012년 이후 1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현상금은 500만달러(약 56억 원)에 달했다.
아무리 ‘패션브랜드를 통한 합법적 경제활동’임을 강조해도 수익금이 몰수될 가능성이 있다. 수십억 달러로 추산되는 구스만의 불법 마약거래 수익금을 쫓고 있는 미 사법당국이 새로운 패션회사와 구스만 사이의 관련성을 눈여겨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구스만의 변호인 마이클 램버트는 “구스만은 아내와 두 딸을 위해 합법적인 기업을 세울 수 있기를 원했다”며 “그는 이 회사로부터 한 푼도 챙기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스만은 물론 그의 조직에 연루된 어떤 사람도 패션 회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특히 이 회사는 뉴욕에서 설립됐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샘의 아들’(Son of Sam) 법률을 근거로 회사 자산을 몰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샘의 아들’ 법은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행각에서 얻은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해 수익을 챙기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덩컨 레빈 전 미 연방검사는 “피고인이 자신의 범죄로부터 돈을 벌지 못하도록 하는 이 법률에 따라 모든 수익금을 회사로부터 몰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