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코미디언 출신 정치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3월31일(현지시간)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만성적 부패의 늪에 빠진 정치계에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정치경험이라고는 출연했던 TV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할을 한 것밖에 없는 ‘백지’ 상태인 그가 대선 1차 투표에서 현직 대통령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오는 21일 결선투표에서 대권을 움켜쥘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 대선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에 따르면 그는 30.4%의 득표율로 17.8%를 기록한 페트로 포로셴코 현 대통령을 크게 앞섰다. 득표율 절반을 넘지 못해 포로셴코와 결선투표에 다시 한번 승부를 벌여야 하지만 열풍은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험이 아예 없는 그가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 잡게 된 데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 유일의 전쟁국가’이자 ‘유럽에서 평균 연봉이 가장 낮은 국가’라는 암울한 현실이 ‘젤렌스키’를 만들었다”며 젤렌스키는 정부를 욕하고 싶어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불만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3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신뢰도는 9%에 그쳤으며 91%는 정부가 부패했다고 답하는 등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다.
지난 1978년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크리비리에서 태어난 젤렌스키는 학창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하며 예능에 재능을 보이다 러시아 개그 경연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인기 코미디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2015년부터 방영 중인 TV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부패한 정권을 비판하다 대통령까지 되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 역을 맡으면서 ‘국민배우’ 명성을 얻었다.
외신들은 특히 자신의 당을 드라마와 같은 ‘국민의 종’으로 명명하면서 드라마 캐릭터와 현실 속 모습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것이 ‘젤린스키 돌풍’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유권자들은 수년 동안 TV에서 젤렌스키를 보면서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마땅한 정치조직이나 정치적 경험을 가진 측근들이 없는 그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의 전쟁은 물론 갈수록 커지는 러시아의 영향력, 답보상태인 각종 개혁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며 실제로 국가를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끊임없이 나오는 점은 치명적 약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