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저항시인’이자 ‘민족적 리얼리즘’의 토대를 마련한 신동엽 시인의 50주기를 맞아 책 3권이 출간됐다. ‘신동엽 산문집’은 시인이 생전에 쓴 평론, 수필, 시극, 편지를 비롯해 방송대본 등 미발표 원고들을 총망라했다. 시집인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과 소설집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은 신동엽문학상 역대 수상자들의 신작들을 엮은 책이다.
출판사 창비와 신동엽기념사업회는 2일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신동엽 50주기 기념사업’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강형철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시인의 장남인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신동엽의 시는 ‘껍데기는 가라’ 등이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군부 독재 등 삼엄한 시절 탓에 사후 20년까지만 해도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기념사업회는 올해 시인 50주기를 맞아 시인에 대한 대중적 친밀도를 높일 계획이다. 강형철 이사장은 “이번에 나온 산문집에서는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신동엽 시인의 열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시인이 고민했던 대목은 오늘날에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남북 정상회담 등이 열리는 등 변화의 시대가 이미 왔다”며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주장한 시인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산문전집에는 1967~1968년 동양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내 마음 끝까지’ 프로그램 대본을 비롯해 총 7부에 걸쳐 시극·오페레타, 평론, 수필, 일기, 편지, 기행, 방송대본 등이 담겨있다. 특히 ‘석림의 신동엽 연보’에는 한국전쟁 당시 시인의 좌익 빨치산 활동 논란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 수록됐다. 청년 시절 시인이 활동한 문학동인 ‘야화’(野火)의 일원이자 경찰 출신인 노문 씨의 증언이 토대가 됐다.
신좌섭 교수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다’ 등은 아버님 시에도 자주 등장하고, ‘산으로 갔다’라는 표현은 시 ‘금강’에도 묘사된 전쟁상황”이라며 “이 대목들은 아버님이 빨치산일 수 있다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사상적 배경에 대한 탐구 목적이나 이를 빌미로 더욱 억압하려던 의도일 수도 있다”며 “노문 씨의 기록은 아버님이 한국전쟁 당시 덕유산과 지리산에 갔지만 빨치산 활동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동엽문학상 역대 수상자 31명은 신작 발표를 통해 시인을 추모한다. 우선 하종오 등 21명의 시인이 총 63편의 신작을 묶어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을 펴냈다. 또 공선옥, 박민규, 김금희 등 10명은 총 10편의 신작을 묶은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을 출간한다. 이 문학상은 1982년 창비와 유족들이 신동엽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유망한 젊은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기 위해 제정됐고 현재까지 51인 수상자를 배출했다. 강 이사장은 “문인이나 소설가 이름을 딴 문학상 가운데 그 문인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현실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상”이라며 “이번 앤솔로지는 특정 주제를 정하지 않았고,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념사업회는 올해 신동엽의 문학 세계를 재성찰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우선 시인의 삶과 시를 되짚어 보는 유튜브 콘텐츠가 제작된다. 이 콘텐츠에는 신동엽문학관 김형수 사무국장이 해설과 진행을 한다. 오는 5일에는 신동엽학회가 주관하는 50주기 기념 학술회의 ‘따로, 다르게, 새로 읽는 신동엽 문학’이 창비서교빌딩에서 개최된다. 13일에는 부여군민체육관에서 제 17회 신동엽 시인 전국 고교 백일장을 연다. 2일부터 30일까지는 부여 신동엽문학관에서 ‘풍자화로 보는역사’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20~21일 전국교사 부여 인문기행이, 5월1일~6월1일에는 신동엽문학관에서 ‘특별전 신동엽과 동학’이 열린다.
또 오는 6월15일에는 성북·종로·광진구 일대에서 인문기행 ‘신동엽의 서울시대’, 9월 28일~29일에는 ‘부여에서 만나는 전국 문학인대회’와 ‘신동엽 50주기 문학제’, 10월1일~31일에는 유명화가들의 신동엽 시 그림전이 신동엽문학관에서 개최된다. 11월과 12월에는 가을 심포지엄, 송년 특별전, 송년 음악회 등이 잇따른다.
사진제공=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