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5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실제 정부 차원의 검토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단위를 낮추는 작업을 일컫는 용어로 이를 테면 현재 1,000원에 해당하는 화폐 액수를 10원이나 1원 등으로 0을 덜어내게 된다. 화폐의 가치에는 변함이 없지만 0을 몇개 덜어냄으로써 숨어있는 현금을 시장에 끌어내고, 사회경제적 편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실시될 경우 산업계나 경제계는 물론 소비 등 일반 국민들의 결제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검토가 본격화할 경우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리디노미네이션 관련 질문에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며 “그러나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따르기 때문에 논의를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국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언급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할 때라고 해서 말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와 지금이 그런 논의가 이뤄질 여건이 됐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원론적인 말“이라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할 여건은 갖춰져 있다는게 한국은행 총재의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1952년 화폐 단위를 당시 100대1로 조정했다. 당시 원을 환으로 바꾸었다. 이후 1962년 ‘10환’을 ‘1원’으로 조정했다.
1962년 화폐 개혁 이후 액면 단위가 여전히 그대로다. 박승 전 한은 총재가 2002년 총재 취임 후 1년 가량 준비 끝에 1000원을 1원으로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하자고 주장했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지난 50여년 사이 경제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화폐단위는 60년대 정해진 기준을 따르면서 미국에서 1달러 제품이 우리나라에서는 1,000단위의 원화로 거래되는 상황이다. 단위 기준으로 원화는 달러의 1,000분의 1인 셈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으로는 숨어있는 현금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기존 구권을 묵혀두기 보다 단위가 변경되기 전에 빨리 이용하라는 신호로 읽혀 내수 시장이 활성화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이에 리디노미네이션을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우는 이번 정부가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와 함께 화폐 단위가 작아지다보니 거래 편의가 높아진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8월 베네수엘라는 화폐 ‘볼리바르’의 단위를 10만대 1로 절하했다. 기존 단위에서 0을 5개 지우는 조치였다. 당시 현지에서 1㎏ 브라질 쌀이 22만 볼리바르에 이르러 국민들이 쌀 1㎏를 사기 위해 현금뭉치를 들고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아울러 회계 기장 간소화 등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꼽힌다.
다만 국민들의 혼란과 혼선은 물론 화폐 제작 비용 등 부작용도 따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금 단위가 바뀌는데 따른 불안정에 대비해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려 다시 부동산 가격 급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인철 참조은 경제연구소장은 3일 SBS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6.7억원 하던 가격이 6만 얼마로 내려가면 ‘6만 얼마나, 7만 얼마나’(하는 마음에) 사람들은 그냥올린다”며 “우리가 가장 불안한게 부동산”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화폐 단위 조정을 틈타 가격 조정을 통해 물가가 불안해질 수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시장은 이미 반응하는 분위기다. 이른바 리디노미네이션 관련주로 꼽히는 일부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한네트의 경우 전날보다 4% 상승한 3,250원에, 청호컴넷은 13.14% 오른 3,100원에 장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