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LIFE, 세상을 바꾸는 우리(세바우)’ 캠페인의 취지에 대한 얘기를 처음 접했을 때 ‘의미가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캠페인이니 저 역시 글씨를 통해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신동욱(42·사진) 캘리그래피 작가는 최근 제주도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본지와 만나 ‘세바우’에 쓰이는 종이컵(‘세바우컵’) 디자인에 참여하게 된 의미를 이같이 밝혔다.
세바우는 본지가 제주올레·환경부·한국관광공사·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추진하는 자원 순환 캠페인이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올레길 인근의 세바우 참여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해 밖으로 나가면 재활용할 수 있는 세바우컵을 받는다. 음료 한 잔을 마시는 사소한 행동에서도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자원 순환의 중요성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종이컵에는 정여울 작가가 짓고 신 작가가 쓴 ‘반딧불의 희망 곶자왈의 생명수/올레길과 사려니숲길의 푸르름/눈부시게 빛나는 우리들의 제주’라는 글귀가 한 줄 한 줄 청록빛 글씨로 새겨져 있다. 모퉁이마다 살짝 곡선을 줘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신 작가는 “자연·환경·인간 등을 중심에 놓은 캠페인인 만큼 곡선을 많이 활용한 편”이라며 “한 줄 한 줄을 살펴보면 파도처럼 흐름이 있는데 이런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끔 디자인적으로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신 작가는 특히 문체에서 덩굴식물의 느낌이 나게 하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이는 컵에 새겨진 ‘곶자왈’이라는 글자에서 잘 드러난다. ‘기역(ㄱ)’이나 ‘지읒(ㅈ)’처럼 직선적인 느낌의 자음이 오히려 둥그스름한 모양을 띠고 ‘리을(ㄹ)’은 마치 하나의 생물체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옆으로 굽이진 채 왼쪽 방사각으로 뻗어 있는 모습이 마치 땅으로 기지개를 켜는 덩굴식물을 떠올리게 한다. 신 작가는 “곶자왈에서는 덩굴식물과 뻗어 있는 식물이 공존하고, 제주의 자연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글자체라고 생각해 일명 ‘덩굴체’의 형태를 이번 작업에 투영했다”고 소개했다.
서울에 살던 그는 지난 2014년 말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도의 환경 보전에 대한 생각을 묻자 내내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 작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자주 놀러 가는데 이주민과 관광객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5년 전보다 확연히 더러워졌다”며 “일부러 돌 틈에다 쓰레기를 꽂아놓고 바닷가에 쓰레기를 던지는 외부인들을 보면 ‘이렇게 깨끗한 바다를 보고 그러고 싶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페트병 비닐을 따로 떼서 버리는 등 사람들이 하나하나 조금씩 손을 벌리면 엄청난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그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였다. 그는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는 세월호 추모 문구를 쓴 주인공이다. 그는 “과거에는 내 작업으로 마음을 따뜻해지는 메시지를 전하고는 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회 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이번 세바우 캠페인 역시 나부터 변해야 우리 공동체가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참여했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환경을 지키자는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제주=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